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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리뷰

<윤시내가 사라졌다> 프리뷰 - 쉽게만 살아가면….

쉽게만 살아가면….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데서 시작된 영화가 그 끝에서 발견하는 건 원래 탐색하고자 했던 대상과는 약간 다를 때가 왕왕 있다. 이 영화가 결말부에서 그 무엇과 함께 찾아내는 또 다른 한 가지는 타인의 세계를 쉽게 판단하지 않겠다는 결심이라고 생각한다.

 

<윤시내가 사라졌다>는 이미테이션 가수 연시내로 활동해온 순이와 유튜버 하다 모녀가 사라진 윤시내를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는 줄거리의 로드무비다. 영화는 그 과정에서 윤시내연시내뿐만 아니라 다른 이미테이션 가수인 운시내’, ‘가시내’, ‘윤신애’, ‘윤사내의 이야기까지 들려준다. ‘윤시내라는 원본의 이름을 두고 제각기 조금씩 변형된 이들의 이름을 나열해 불러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말장난처럼 느껴져 조금쯤 웃음이 세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모창을 하는 것에서 나아가 원본과 비슷하게 보이기 위해 겉모습을 바꿔내고 무대에서의 습관까지 그럴싸하게 흉내 내는 윤시내 전문가.

이들을 그저 짝퉁이라 매도했던 하다는 여행의 과정에서 그들 각자의 세계를 겸연쩍게 들여다보게 된다. 그런가하면 왜 그러고 사냐는 말을 듣기 일쑤이던 관종 유튜버하다도 외부를 향해 자신의 내밀한 세계를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짝퉁이며 관종이며 우스운 별명을 붙여 넘겨짚는 건 쉽다. 각자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머리를 굴려 생각하는 건 귀찮고 힘들고 때로는 슬프기까지 하다. 모든 것을 타인의 몫으로 돌린 채 조소하고 원망하고 오해하는 건 너무나 쉽고 간편하다. 하지만 가짜에도’, 아니 그 무엇에도 진심은 있는법이다. ‘운시내에게는 운시내가 되기까지의 고민의 시간들이 있고, ‘연시내에게는 오랜 기간 윤시내의 무대를 되감아보며 치열하게 윤시내를 연구했던 시간들이 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이 모두에게 있다. 누구의 사정도 고려하지 않고 제 나름의 쉬운 방식으로 판단하며 살겠다는 건 그 많은 사람들을 상처 주겠다는 것과 얼마나 동떨어져있는 것일까, 막연히 생각한다.

 

솔직히, 무조건적으로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건 어쩐지 좀 허무맹랑하다. 모두가 그렇게 행동하는 세계가 정말로 있다면 그건 유토피아라 이름 붙여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타인이다. 우리는 곧잘 자신의 입맛대로 무언가를 판단해버리고 또 오해받는 일을 반복해낼 것이다. 그렇지만 원래 세상이 그런 법이라고 실망하고 안주하는 대신, 조금이라도 어렵게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다시금 생각한다.

 

연시내운시내를 처음 만나던 날, ‘운시내의 이름을 여러 번 반복해서 물어본다. ‘윤시내와 발음이 비슷한, 그래서 연시내와도 윤신애와도 어쩌면 가시내와도 헷갈릴 법한 그 이름을 정확하게 소리내기 위해서 재차 묻는다. 스치듯 흘러가는 이 장면이 참 애틋했다. 당신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고, 당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게요. 그런 뭉근한 태도로 살아가고 싶다.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김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