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자신의 캐릭터와 닮을 때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최소한의 ‘삶의 질’은 지켜내려 하는 부부에 대한 이야기다. 전셋집에 살고 있는 정희(원향라)와 영태(박송열) 부부는 직업을 구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자본으로부터 압박을 받는다. 부부가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삶의 질’은 임시로 하는 그들의 일의 성격과, 낮과 밤의 시간차로 점점 적어져 간다. 정희는 사채를 빌렸다는 사실을, 영태는 아는 형에게 빌려준 카메라를 돌려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서로에게 고백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들이 함께 지향해가던 ‘삶의 질’과는 위배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엔 무거워 보이는 서사와는 달리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시종일관 유머러스하다. 슬랩스틱과도 같은 영화 속 인물들의 동선들, 특정 상황에서 들어가는 과감한 클로즈 업 등.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리듬은 유머가 구현하는 순간들로부터 기존의 많은 한국독립영화들이 ‘가난’을 다루는 방식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영화는 가난이라는 현실에 잠식되려하지 않는다. 그것이 정희와 영태 부부로부터 오는 유머이든, 그들을 괴롭히는 다른 현실로부터 오는 유머이든 <낮에는 덮고 밤에는 춥고>는 끝내 그 불안한 상황들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한다. 이 영화의 감독인 박송열 감독과 원향라 배우가 함께 각본을 쓰고, 또한 그것을 체화해나가서 그런지 <낮에는 덮고 밤에는 춥고>는 마치 정희와 영태가 추구하는 ‘삶의 질’의 어떤 형태와 닮아있다-혹은 그 형태를 공감한다.
엔딩 크레딧을 유심히 보면 녹음만 제외하면 연출, 촬영, 편집 등의 거의 모든 프로덕션 과정을 박송열 감독과 원향라 배우 둘이서 해 나아간 것이 눈에 띈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가 검소하다. 극 중 영태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나는 없는 거’지 않기 위한 부부의 최소한의 삶의 목표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듯 한 박송열, 원향라의 두 예술가의 창작방식이. 그러한 영화의 안과 밖에서의 태도들이. 누군가는 이 영화에서의 부부가 왜 열심히 일을 구하지 않느냐고, 그들이 바라는 ‘삶의 질’은 욕심이지 않느냐고 질문할 수 있겠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의 푸념하는 것 같은 제목마저 검소해 보인다.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류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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