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을 위해 자유롭기, 혹은 그 역.
<해피아워>(2015)에는 버스를 탄 준이 처음 만난 사람과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나는 그 장면을 좋아한다. 생각해보면 이만희의 <태양 닮은 소녀>(1975)에도 모르는 사람을 모아 생일 파티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 나는 왜 그런 장면을 좋아하지? 아무튼, 그런 장면의 상상력을 전제 삼아 만든 것이 하마구치 류스케의 <우연과 상상> ‘3부: 다시 한 번’이였다. 그러므로 3부의 내러티브를 주절주절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 착각과, 모름과, 자유와, 그 중첩에서 발생하는 우정은 말할수록 시시해지니까.
그러니 차라리 다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만다 쿠니토시와 만다 타마미는 박진희와의 인터뷰에서 일상의 신체가 연기를 거부한다고 이야기한 적 있다. 일상적인 장면에서 그 신체의 동선이나 움직임이 그 실제-일상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우연과 상상>의 ‘2부: 문을 열어둔 채로’에서 사사키가 침대에서, 무라야마가 바닥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그러한 맥락으로 보였다. 사사키가 무라야마 쪽으로 눕자, 무라야마는 사사키 쪽이 아닌 사사키가 누운 쪽으로 자세를 고친다. 이것은 등을 지는 행동일까? 감정의 동기화일까? 이런 오묘함은 무라야마를 이중화하여, 이후의 틈을 예비한다. 이성과 감성이 동시에 자극되는 순간이다.
이런 맥락에서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에서 가장 노골적인 것은 피부가 닿는 장면이다. 접촉이라 부르기에는 내면의 불투명함이 있으며, 살갗이 닿는다고 폄하하기에는 도타운 구석이 남아있는 탓에,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에서 피부가 닿는 순간들: 손잡기, 안기 등은 묘한 긴장을 동반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가 눈 뜨고 안기, 라는 행동으로 탁월하게 집약한 것이, 바로 이 이중성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연과 상상> ‘3부: 다시 한 번’의 마지막 포옹은 탁월하다. 그들은 불신할 깊이가 없기 때문에, 내면에 대한 불신 없이 오롯이 접촉의 순간을 향유할 수 있다. 앗, 3부에 대해 이야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또한 <우연과 상상>의 주제이니, 고치지 말기로 하자!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금동현
'지난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객프로그래머 초이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추천사 - 영화가 자신의 캐릭터와 닮을 때 (0) | 2022.05.24 |
---|---|
<아치의 노래, 정태춘> 프리뷰 -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울려 퍼질 아치의 노래 (0) | 2022.05.17 |
<쓰리: 아직 끝나지 않았다> (0) | 2022.04.20 |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 꼼꼼하게 공감하다 (0) | 2022.04.19 |
관객프로그래머 초이스! <신림남녀> 추천사 - 꿈이 밥 먹여 준답니까 (0) | 2022.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