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영화 가이드 제 1장
내 능력 안에서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굳이 이해하거나 설명하려 애쓰는 일에는 사실 별로 관심이 없다. 그보단 어찌 됐건 결국 하나의 반응으로(는) 남을 수 있는, 그것에 대한 나의 느낌 또는 인상을 직시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작업이라고 믿는다. 영화는 결국 물 속에 잠긴 거울 같은 것이어서, 거기에 누군가의 시선이나 생각이 닿을 때 그 빛이 어디로 향할지는 나도 당신도 알지 못할 것이다. 최소한 솔직하고 성실한 난반사의 기록이기를 바란다.
제목의 세 단어가 그대로 영화의 각 챕터가 되는 <괴물, 유령, 자유인>은 ‘실험영화’ 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혹은 두려워하는) 요소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 서사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각자의 호흡으로 다듬어진 이미지와 문장들은 실시간으로 빛나거나, 또는 어두워지며 인적 드문 호숫가의 물고기처럼 영화 속을 유유히 헤엄친다. 흔히 말하는 ‘일반적인 영화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장면 어떤 대사라도 누구에게나 각자의 의미와 상징으로 가 닿을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로운 감상이 보장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당신이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바로 이 영화가 될 것이다, 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전해주고 싶다. 호흡은 가볍게, 힘은 최대한 빼고. 부디 감각을 깨우는 시간이 되길.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최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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