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으로
눈이 깔린 아버지의 무덤가에서 경아가 연수에게 연수 입장에선 동의하지 못할 말을 건네고, 연수가 그 대답으로 자신은 엄마밖에 없다고 대답을 했을 때 나는 <경아의 딸>이 연수의 삶의 방식보다 연수가 바라보는 시선 자체에 조금 더 공감하는 영화일 것이라 확신했다. 언뜻 보면 <경아의 딸>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맞서야만 하는 연수와, 그 과정에서 딸에게 다가가는데 고군분투하는 경아의 투쟁에 관한 지점들이 짙게 드러나지만 그 저변엔 어떤 시선에 대한 희망이 있다. <경아의 딸>은 연수가 경아를 보듯이, 경아가 연수를 봐주기를 희망한다.
전남자친구가 퍼트린 동영상 유출 사건에 대해 연수와 경아가 맞부딪칠 때 살아온 세대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서로의 다른 반응들은 연수를 상처 입힌다. 사적인 동영상 유출과 거기에 대한 경아의 반응을 감당하지 못한 연수는 숨어버리고, 경아는 그런 딸을 찾아 나선다. <경아의 딸>은 숨어있던 연수를 경아가 찾아내야하는 이야기이다. 그것이 경아의 운명이다.
그 과정에서 연수와 경아의 곁에 있던 누군가가 과감히 내쳐지기도, 정말 예상치 못한 누군가가 그들의 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한 헤어짐과 만남들이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 때문에 김정은 감독은 경아와 연수 둘만의 서사뿐만 아니라, 그들과 마주하는 타인들과의 만남도 그것 못지않게 세심히 담아낸다.
<경아의 딸>에서는 일시적으로 소비되는 이들이 거의 없다. 김정은 감독은 연수와 경아가 서로뿐만 아니라 타인들이 어떻게 보고, 사고하는지를 마주하도록 영화의 운명을 이끈다.
연수와 경아는 그 만남들을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더 나아간다. 자신을 벗어나 좋든 싫든 간에 타인들을 마주하고, 다시 연수와 경아가 만났을 때 <경아의 딸>이 도달한 기적이 기다리고 있다.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류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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