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석범과 최은규를 2017년 오오극장에서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의 얼굴을 익힌 후부터 종종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상영 영화 혹은 장소, 시간과 관계없이 극장에 항상 두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극장에 가면 자주 두리번거렸다. 이석범과 최은규의 (빈)자리를 확인하기 위해서. 아래 인터뷰는 두리번거림의 결과다. 동시대 영화문화에서 이석범과 최은규가 점유한, 때에 따라 옮기기도 하는 좌석의 위치가 궁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3355》의 창간호에 이들의 기록이 남기를 바랐다. 신경질적 시네필에 대한 냉소 또는 혐오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었다. “저는 시네필이 아니에요.”라고 이야기할 때도 ‘시네필’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듯, (언제나 진동하는 단어로서) ‘우리’는 여기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11월 19일 오오극장 옆의 한 카페에서 진행되었다. 인터뷰이의 말투를 살리기 위해 분량이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가감 없이 기록하였다. 인터뷰에서 언급된 영화, 책의 정보는 정리 과정에서 각각 괄호와 각주로 덧붙였다. 질문과 답변이 호응하지 않는 부분이 종종 있다. 이는 모두 인터뷰를 원활히 진행하지 못한 나의 책임이다.
동현: 두 분이 영화를 의식적으로 보기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석범: 계기를 찾지는 못했어요. 환경적으로는 제가 9-10살 때, 경제 위기로 사람들이 많이 해고되면서 비디오 가게가 많이 생겼어요. 어렸을 때부터 영화, 만화에 익숙할 수 있었던거죠. 2001년 이후에는 1,000석 800석의 대구 극장, 한일 극장, 시네 아시아 같은 단관 대형관. 대형관이 주는 아우라라던가, 필름이 줄 수 있는 아우라에 빠졌어요. 꼰대 같은 소리기는 하지만 필름으로 영화를 보면, 특유의 따뜻한 질감이라고 하나, 무언가 다른 세계로 가는 기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 관성이 된 것 같아요. 그러나 또 단순 관성이라고, 더 이상 영화를 보지 않게 되면 허무하고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레이디 버드>(그레타 거윅, 2018)에도 그런 대사 있잖아요. “사랑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저한테 영화는 그런 느낌 같아요.
은규: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을 포기한 것 같아요. 모르기도 하지만, 알게 되어버리면 굉장히 시시해질 것 같아요. 제일 처음으로 영화를 보고 인상 깊었던 것도 생각해봤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스탠리 큐브릭, 1968)를 보고 개안을 했어요. 영화를 여태 과소평가하고 있었구나, 이거라면 인생을 걸어 봐도 좋겠다는 느낌? 그 후로 영화가 좀 더 중요하게 느껴졌어요. 대학교에서도 영상을 전공하게 된 것 같고, 뭐 그런 과정으로 살아온 것 같아요.
석범: 하나 덧붙이자면, 저는 영화를 조금 계몽적으로 보는 측면이 있어요. 2007-8년에는 집에서 《조선일보》를 봤거든요. 저도 그때는 소고기 수입하면 어때, 광우병, 사람들 뭐 저리 난리지 했는데, 그런 것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된 게 dvdprime에 올라왔던 글들을 통해서였어요. 또 성인이 되면 영화제에 가잖아요. 성인이 된 2009년에 영화제에 좋은 영화가 많았어요. 이를테면 <대추리에 살다>(정일건, 2009)같은 영화를 보고 사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거죠. 그러니까 dvdprime, 영화제가 아니었으면, 저를 아마 동성로에서 일베 활동하는 사람으로 알게 되었을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걸 놓을 수 없게 해주는구나. 내가 꼰대가 되지 않게 해주는구나. 그런 것도 있죠.
동현: 스스로 시네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은규: 네. 저는 시네필이라고 말하고 다녀요. 몇 달 전에도 《씨네21》에 비슷한 쟁점이 올라와서 재밌게 읽었는데, 저는 그 단어에 큰 의미 부여를 안 해요. 영화가 인생에서 중요한 파트를 차지한다는 의식이 있고, 영화를 보기 위해 무언가 다른 걸 포기한 적 있다. 그 정도라면 누구나 시네필이라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그 단어를 쓰는 데 아무런 반감이 없는데, 아무래도 사람들이 너무 그 단어의 무게감에 짓눌린다는? 그런 느낌을 받을 때는 있죠.
석범: 저는 잘 모르겠어요. 나는 “시네필 아니다”가 몇 년째 유행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시네필 중에 도태되시는 분들이 많아요. 나이 드신 영화 팬들 중에서, 사회생활은 거의 안 하시고 영화만 보고 다니시는 분들이 있고, 사회생활 하시더라도 영화 커뮤니티 안에서도 정성일이 말하는 맹목적인 사랑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을 표현하고 다니는 사람은 거북해져서 피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나도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있어요.
동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도 한국독립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실 별로 없잖아요. 그런데 두 분 다 제가 관객프로그래머를 함께 하면서 느꼈는데, 영화제에 가셔서도 독립영화를 보고 오시더라고요. 독립영화를 보는 거는 그냥 영화를 좋아하는 거랑 또 레이어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맥락에서 독립영화를 의식적으로 보는 이유가 있나요?
석범: 영화들을 먼저 보고 영화의 좋은 점을 찾아서 이거를 사람들에게 영업을 하고 싶다, 알리고 싶다, 그런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한국독립영화는 별로라는 통념이 있잖아요? 그렇지만 <12하고 24>(김남석, 2018) <해협>(오민욱, 2019), <셀프-포트레이션 2020>(이동우, 2020) 같은 작품에는 영화적 실험이 되게 많거든요. 독립영화를 재미없다고 하는데 조금 의아스러운 거죠. 몰라본다, 게으르다… 그런 것도 있고. 이를테면 <혜영, 혜영씨>(김용삼, 2019)가 왜 잘 안 됐는지 이해가 안 가요. 원룸, 고시원 같은 작은 공간이 많아지면서 영화가 공간에 적응하는 것에 대한 이미지적 질문이 든 영화로 느껴졌거든요. 아무튼 독립영화도 재밌는 게 참 많다고 생각해요.
은규: 들으면서 깨달았는데 저도 독립영화를 좋아한 적이 없었어요. 제가 오오극장에서 제일 처음 본 영화가 <우리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2015년도에 오오극장에서 소노 시온 특별전을 했어요. 그게 처음이었어요. 저는 처음에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거죠. 결국 독립영화를 보게 된 계기는, 극장, 영화제 같은 장치에서 따라온 것 같아요. 또 독립영화계는 영화만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GV 같은 행사나 인적 네트워크가 부수적으로 남잖아요. 이런 게 없었으면 오오극장도 자주 안 왔을 것 같아요. 사람 사이 소통이 용이하고, 저희 같은 사람이 일반 관객이지만 행사도 만들 수 있고, 낮은 문턱에서 행사를 만들 수도 있으니깐.
동현: 두 분은 영화를 보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석범 씨는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고 있고, 은규 씨는 비평에 관심이 많으시잖아요. 생각해보면 영화를 그냥 보는 것도 가능하잖아요? 그런데 두 분 다 영화를 보는 것에서 끝내지 않는다는 생각을 받았어요. 이런 이유가 조금 궁금했어요.
석범: 정성일이 종종 말한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을 무의식적으로 따른 것 같아요. 또 사적이고 찌질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먹고 살아도 내가 영화로 먹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게 아직 남아있어요. 그게 아니면 영화를 가지고 먹고 살 수 없더라도 시간이 남을 때마다 영화를 찍는 방식이라던가, 글을 쓰는 것으로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
은규: 그냥 욕구 같아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하고 싶은 걸 했어요. 글을 읽고 싶다 하면 찾아보고, 조금이라도 뭔가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쓰고. 한 때는 그게 주어진 임무나 목표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모두 멋진 척 같더라고요. 거창한 의미는 없었던 것 같아요.
석범: 덧붙이자면 최근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면서 봤던 만화가 있어요. <시로바코>(미즈시마 츠토무, 2014-2015), <영상연에는 손대지마>(유아사 마사아키, 2014), 이들 만화는 공통적으로 만드는 과정을 재밌게 보여주는데요. 열정이라고 해야 하나? 만드는 데서 재미를 느끼는 데 부러움을 느낀 거예요. 영화를 좋아하니깐, 어떻게 계속 보다보니, 영화를 만드는 과정도 보게 되잖아요. 그래서 욕심을 부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현: 그럼 영화 일반에 대한 질문은 이까지 하고요. 대구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해 궁금했어요. 대구도 최악은 아니지만, 서울이나 부산에 비하면 영화를 보기 좋은 도시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혹시 영화를 보기 위해 타지로 간 기억이 있나요? 있다면 힘든 기억은?
은규: 부천영화제가 생각나네요. 아시다시피 부천은 수도권이고, 대구에서 버스 기준 4시간이 걸리잖아요. 또 부천은 위성도시라고 해야 하나? 그런 특색이 있어서 숙박 시설이 마땅찮았어요. 그래서 매일 찜질방에서 자게 되더라고요. 그러다보니깐 부천에서 관객으로서 삶의 질은 굉장히 낮았어요. 3-4년 전에는 찜질방에서 10일을 버틴 적도 있는데, 지금 하라면 못할 것 같거든요.
석범: 저는 힘들었던 기억은 없어요. 오히려 오고 가는 게 좋아요. 대구에 있으면 일상이 반복되고 지루하잖아요. 영화제라는 공간 자체가 어떻게 보면 가상적인 공간이잖아요. 현실이 아니라 휴가 온 느낌이기도 하고. 다른 세계, 관객을 위한 시스템이 어느 정도 이뤄져있죠. 사실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그 공간이 나한테 맞는 공간이고 살아있는 느낌을 줘요. 영화가 아니라, 영화 외적인 세계 때문에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코로나 때문에 현장에 못 가게 되니깐 나만을 위한 세계가 사라져서 조금 슬프네요. 아무튼, 없습니다.
은규: 사실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3-4년 전에는 9박 10일 가고 했는데, 이제는 신체의 노쇠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 한국 모든 영화의 영화가 점점 안 좋아져요. 무슨 정책의 문제인지 예산의 문제인지 프로그래머의 문제인지, 너무 많은 변수가 있겠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모든 영화제가 갈 때마다 점점 별로더라고요. 영화만 좋으면 힘들어도 상관없거든요. 정작 영화가 안 좋으니까 몸이 피곤해지고 집에 가고 싶고, 그런 부분들이 아쉬웠어요.
동현: 영화제는 사실 그 도시를 홍보하기 위해 관광지를 끼고 있는 게 있잖아요. 그럼 영화제를 차치하고 그냥 프로그램, 이에 대한 생각은 없으신가요?
은규: 생각 많죠.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독일고전 SF 기획전을 했거든요. <메트로폴리스>(프리츠 랑, 1927)를 보려고 KTX를 타고, 그날 태풍이 왔나? 비가 엄청 왔어요. 비를 홀딱 맞고 앉아 있는데, 영화를 보고 있으니깐 눈물이 날라 하더라고요. 영화가 좋아서 눈물이 나는 게 아니라, 이 고생을 하면서 앉아있는 열정, 스스로에게 감동해서요. 근데 서울 사람이면 지하철 타고 오면 되는 거잖아요? 순간적인 박탈감이 막 솟구치면서 영화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어요. 뭐, 어쩔 수 없죠. 그리고 뭐, 그나마 여기는 최악은 아니다. 버티고 있는 중이죠. 하다못해 극장은 있으니깐.
동현: 석범씨 같은 경우는 가는 길도 영화를 보면서, 살고 있는 일상과 단절되는? 그 영화가 더 좋게 보일 수도 있잖아요. 근데 또 은규 씨가 말하신 것처럼 또 박탈감을 주기도 하잖아요. 좋은 것과 나쁜 게 공존하네요.
동현: 그런데 극장이 여전히 유효한가요? 갑자기 묻고 싶어지네요. 극장이 안 중요하면 합법 다운로드, 해적질을 하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 되잖아요? 결국 이런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전제는, 극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공유되고 있어서인 것 같아요. 이런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석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화가 끝나고 긴 복도를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잖아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고, 시내를 걷거나, 바깥의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며 영화를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생성되는 게 좋아요. 고전적인 이야기지만, 영화를 몰입해서 보려면 극장 자체가 중요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는데 중요하기도 하고요. 영화관이 가질 수 있는 아우라는 둘째 치더라도, 영화관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은 것 같아요.
은규: 저도 똑같아요. 책 영화와 시에서, 영화는 콜라다 이런 취지의 이야기를 했더라고요. 즉 영화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영화를 둘러싼 공기, 복도, 지형적 조건, 가는 과정. 보고 오는 여운이 모두 중요한 것 같아요. 또 해묵은 이야기지만 집단 체험이잖아요. 집에서 혼자 볼 때랑은 분명 다른 게 있어요. 집에서 혼자 보는 게 편의라면, 극장에 가는 건 의식, 제의적인 게 있죠.
석범: 아까 영화제가 가상의 공간을 구현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동현: 대구단편영화제에서 애플시네마, 오오극장에서도 대구영화를 묶어서 소개하곤 하잖아요. 결국 지역영화-대구영화로 묶여서 소개되는 작품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지역영화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지역성’이라는 것이 영화 안에 구현되어야 ‘지역영화’라는 명칭이 가능한 것 같아서요. 이어서 질문하자면 ‘지역영화’라는 게 존재한다할지라도, ‘대구영화’를 가능케 하는 대구의 지역성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은규: 저는 굉장히 지양해야 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지역영화라는 표현 자체를. 그런 단어가 존재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사실 지역영화라고 불리는 이유가 지역 돈으로 지역에서 찍혔다는 사실 뿐이잖아요. 지역의 제작 지원을 받으니깐, 지역 이름이 붙는 것뿐이죠. 굉장히 많은 영화들이 지역영화라는 이름을 활용해서 포장된다고 생각을 분명히 하고 있어요.
동현: 결국 지역영화라는 것은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내려온 자본을 활용하는 것이고, 이를 비평적으로 명명할 필요는 없다는 말씀이시네요.
은규: 네. 당연히 배경이 여기니깐, 우방타워 같은 공간이 존재하는 거지. 그걸 ‘대구영화’라고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석범: 다른 이야기지만, 저는 대구 영화감독의 영화에서는 ‘지역성’을 무리하게 넣는다는 느낌은 받은 적이 없어요. 별개로 영화에서 방언이 사용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최근 김현정 감독의 <외숙모>를 보셨나요? 외숙모를 두고 가족 간에 다툼이 일어나는데, 딸만 빼고 전부 다 방언을 쓰거든요. 이 영화의 방언이 지역성이 잘 드러난 사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했어요.
동현: 지역영화라는 개념과 무관하게 관객은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끼리 만날 확률이 높잖아요. 이를테면 석범 씨한테 이전에 ‘오오극장 비밀의 방’에 소개를 받은 적 있는데, 이것처럼 ‘지역관객문화’라는 것을 단순히 지근거리에 있는 관객 간의 문화로 본다면 이런 것에 참여한 적이 있는지? 대구지역관객문화에 대해 이야기해주시면 좋겠어요.
석범: ‘오오극장 비밀의 방’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처음에는 관객 유입을 위해 친근한 영화를 트는 게 목적이었는데, 어쩌다 제가 맡게 되며 제가 좋아하고 보고 싶은 영화를 틀게 되었어요. 결과적으로는 관객도 줄고, 제 욕망 때문에 안 좋게 흘러갔던 것 같아요. 저는 필름 통이란 공간에서 영화 상영회를 비정기적으로 열고 있는데, 제가 상영하고 싶은 영화가 있고 고정된 수요가 있어서 최근에 열고 있기는 해요.
동현: 그런데 관객문화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러고 있는 것도 관객문화긴 하지만. 그런데 사실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는 오오극장이 만든 거잖아요? 관객문화라 하면 관객끼리 자발적으로 모이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 같거든요.
석범: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있었죠. 동성아트홀릭이 관객문화의 예였던 것 같아요. 단체 상영, 카페 회원끼리 주기적으로 모이기도 했거든요. 거기서 감독이나 평론가가 된 사람도 있고. 결국 오래가지는 않았어요.
동현: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입니다. 영화에 대한 활동을 계속 하실 건가요?
석범: 네 당연하죠. 그러나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은규: 저야 영화도 좋아하고, 제반 활동도 좋아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어느 순간 생업이 생기고 삶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하나 둘 씩 놓게 되는 것 같아요. 언젠가 삶이 굉장히 바빠지면 보는 것만 남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나 보는 것을 놓지는 않을 생각이에요. 옛날에는 영화평론가가 되고 싶다, 같은 생각을 했는데요. 어느 순간 보기만 해도 충분하더라고요. 써야겠다는, 그 정도의 강렬함이 없었어요. 그렇게 속이 부글거리지 않고, 금방 꺼지더라고요. 일단 관객을 포기하지는 않겠습니다.
동현: 그런데 생각해보니 은규 씨는 시네소파와의 활동을 지금도 하고 계시잖아요?
은규: 아, 정확히 이렇게 말해야겠다. 저 혼자는 무언가를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사람도 많이 만나고 인적 네트워크가 있을 때 좀 더 힘이 나는데, 혼자서 무언가를 할 때는 힘이 나지 않더라고요. 뭔가 확실한 계기가 필요해요. 누군가가 나타난다던지. 혼자 하기는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보는 것 이상으로는. 결국 뜻을 같이 하고, 같은 것을 좋아하고, 같은 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많아야 힘이 나잖아요.
석범: 결국 이런 거죠. 뭔가 저랑 은규 씨와 동현 씨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종종 어떤 사건에서 서로 만나기도 하고, 또 그 사건이 지나면 다시 만날 수도 있겠죠. 그런 식으로 해야겠죠. 연대에 대한 경직된 상상이 아니라, 느슨한 상상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은규: 종종 서로 같이 모이는 지점은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동현: 그럼 정말 마지막. GV 마지막 질문처럼, 앞으로의 계획? 은 무엇인가요.
석범: 최근 공장에서 일하다가 해고됐어요. 그러지만 밀린 급여와 실업 급여 받아서 총 8개월을 버티고 있는데요. 8개월 동안 되게 재밌었어요. 보고 싶은 영화도 몰아서 보고, 영화제도 가고.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 1년은 일하고, 1년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이렇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다음 계획이 있다면 이런 식으로 해보고 싶어요.
은규: 영화와 삶의 균형. 무라밸을 중요시하겠다. 영화를 업으로 삼고 싶은 마음도 있다. 로 정리하겠습니다.
이석범과 최은규는 기대대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영화를 보지 못하면 죽을 수 있겠다거나, 영화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단언을 들을 때마다 놀라기도 했다. 영화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영화라는 게 포기하지 않을 만큼의 가치가 있을까요. 스스로 자문하는 날이 많았다. 나는 이석범과 최은규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때로는 친근함을, 때로는 거리를 느꼈다. 같은 질문에 대한 이석범과 최은규의 상반된 답변처럼,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에는 서로 다른 수많은 상상력이 포함되어 있나보다.
인터뷰 끝나고 한 시간 채 되기 전에 우리 모두 흩어졌다. 다음 만날 순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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