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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5] 오오극장, 영화처럼 내게 오오 / 임아현 관객프로그래머

 

 

 영화는 나에게 음식으로 따지자, 아보카도나 치즈같이 찐득한 질감을 가진 느낌으로 비유할 수 있다. 예술이라는 것이 대부분 일상의 빈틈과 건조함 사이를 메꾸어준다고 할 때, 나의 삶에서 영화는 조화로운 풍미가 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이 다양한 맛을 느끼게 만들고 감각을 깨워주기 때문이다.

나를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
찐득하게 어딘가에 눌러 붙게 만드는 것이 내게 영화가 주는 힘이다.

 처음 오오극장이라는 공간을 인식하게 된 건, 내가 영화의 찐득한 맛을 점점 알게 될 즈음이었다. 대학교 2학년, 듣기 싫은 수업들을 출튀하고는 곧장 중앙도서관 멀티미디어실에서 DVD를 빌려다 보며 한 해를 날렸었다. 그러다 덜컥 대구퀴어영화제를 담당하게 되었고, 독립영화전용관으로 개관한 오오극장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진행했던 퀴어영화제에서 상영한 프로그램들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었지만, 국내의 단편영화들과 해외의 작품들을 접해볼 기회들은 내게 새로운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보게 된 계기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나의 시선과 궁금함들은 오오극장과 이곳을 만들어낸 사람들로 향하게 됐다.

 지역의 예술 공간으로써 오오극장을 탐험하는 방문객을 넘어, 오오극장 안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대구단편영화제 자원활동가를 신청하게 되었다. 2017년 한참 뜨거웠던 여름, 하루의 시작과 끝을 오오극장에서 보냈다. 이어지는 일정 때문에 지치는 순간도 많았지만, 독립단편영화들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이만큼 있다는 것에 대한 신기함과 영화를 직접 만들고 출연하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영화제를 안내하는 일 자체가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내게는 전혀 접점이 없던, 멀게 만 느껴졌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만나
서로 반가워하고 교류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 때의 느낌들이 굉장히 따뜻하게 다가왔고, 이곳이 지역의 든든한 커뮤니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해, 오오극장의 행사들과 활동들을 찾아보다 관객프로그래머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자원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에너지들이 동력이 되어 지금까지 3년 정도 관객프로그래머 활동을 하게 되었다.

 관객프로그래머로 활동을 하다 보니, 나에게 영화가 주는 의미, 그리고 오오극장이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종종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관객프로그래머 초이스로 박배일 감독님의 <라스트씬>을 상영하고 GV를 진행하면서 지역과 호흡하는 영화관, 독립영화를 틀고 네트워크를 만드는 공간에 대한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가 삶에서 근사한 음식이라면, 영화관은 삶에서 음식을
마음 놓고 즐기게 만드는 첫 번째 조건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시선을 넓히고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경험을 하지만, 그런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닌 단어 그대로 영화를 통해서 경험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보상 같은 것이라고 느꼈다. 영화를 애써서 고르고 시간을 들이는 일에 덧붙여, 한 자리 자리마다 정성들인 좌석에 파묻힌 채로, 맥주나 커피를 홀짝이며, 내려오는 엔딩 크레딧을 누구의 방해도 없이 하염없이 바라다 볼 수 있는 곳에서 느끼는 영화적인 경험. 그런 경험을 오오극장에서 겪을 수 있었다.

 영화관은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지만, 더 나아가 오오극장은 영화와 사람을 담아내는 그릇같다는 생각을 했다. 극장이라는 그릇을 빚어내기 위해 열심히 물레를 돌리는 사람들과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대구라는 지역 안에서 영화를 즐기고 영화관을 통해 만나고 소통하는 사람들이 담겨있었다. 나는 관객프로그래머 활동과 극장을 통해서, 많은 영화와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관객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지, 지역의 문제들을 영화관이라는 공간을 통해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커뮤니티 시네마로써, 극장이 가진 책임감은 영화를 상영하는데 그치지 않고 지역 커뮤니티와 연대하고 생태계를 만드는 일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오극장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땐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일 뿐이었지만, 지금은 대구에서 살고 있는 나를 긍정하게 만들기도 하는 소중한 네트워크라는 생각도 들게 만든다.

오오극장은 이렇게 내게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일방적인 공간이 아닌
말을 건네게 만들고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곳이다.


 GV를 진행할 때면, 반짝이는 관객들의 눈이 나와 감독님들에게 쏟아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눈을 마주하면서 질문을 건네고 주고받으면 에너지를 얻는 느낌이 든다. 긴장하며 준비했던 질문들이 관객들과 감독님들의 입을 통해 확장되고 의미를 가지게 될 때 나는 극장에서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관객프로그래머라는 이름으로 잊어버릴 수 없는 멋진 음식들을 맛보고 어울리는 그릇을 만들어가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오오극장을 떠올리면, 고양이가 자유롭게 배회하는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먼저 든다. 어느 극장에서도 만날 수 없는 에너지와 공존하는 여유로움이 있는 곳이다.

그 자체로서 영화가 되는 곳이자 도시를 향한 애정과 사람의 호흡을 담아내는 공간.

 찾아오는 사람들 모두 이곳에서 아주 오래 영화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