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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5] 지금, 영화, 감독 - 김현정 감독 인터뷰 / 곽라영 관객프로그래머

 

곽라영: 팬데믹 시대가 도래 하면서 영화계뿐 아니라 일상 자체가 전과 달라졌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김현정: 장편 촬영 후 후반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곽라영: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컴퓨터 공학과를 전공한 직장인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셨을 것 같았는데 의외였어요.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시나리오 아카데미, 동아리에 참가하면서 영화판에 입문하게 되셨다는데 어떤 지점에서 확신이 드셨을까요.

김현정: 어떠한 확신이 있어 영화를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당시 회사 생활이 쉽지 않았고, 지속할 만큼 열정이 없었어요. 잘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니 이러다 죽겠다 싶더라고요. 현실 도피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막연히 글을 쓰던 중 픽션을 쓴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로망 같은 게 있었는데 호기심으로 시나리오 학원을 다니며 시작하게 되었어요.

 

곽라영: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는 일을 선택하신 것 같아요.

김현정: 사실 영화를 별로 보지 않았어요. 당시엔 애니메이션을 더 좋아했어요. 일을 그만두고 다른 곳에 이력서도 내보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어영부영하며 지낸 시기도 있었고요.

 

곽라영: 포털 사이트에 김현정을 검색하면 무수한 동명이인이 나오는데요. 감독님만큼 수상 이력이 화려한 분은 없는 것 같아요. 그 중 미쟝센단편영화제 대상 <나만 없는 집>을 이번에 보게 되었어요. 만장일치 수상이 단번에 이해가 될 만큼 영화는 재밌었고 슬펐고 쓸쓸했어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목의 의미와 이라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김현정: <은하비디오>, <나만 없는 집>을 만들 즈음 습작이 많았어요. 시간과 공간을 비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다 과거 시대를 떠올렸어요. 공간에 대한 애착은 크게 없고(궁금하긴 하지만 특별한 의미를 두지는 않아요.) 다만 영화 내용 안에서 표현되면 좋을 공간을 고민했어요. 건널목, 기찻길, 유리공장 등은 영화 속에서 쓸쓸함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한 공간이에요.

 

곽라영: 감독님 작품은 시각적으로 화려하지 않지만 서사가 탄탄해서 보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잘 만든 이야기가 미술처럼 느껴지고요. 영화를 만드실 때 소재 선택부터 신중하실 것 같은데 작업 방식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현정: 습작 기간 동안 조바심에 엉뚱하고 개성 있게 써보려 했어요. 시나리오 수업에서 서로의 글에 대해 피드백 하는 시간이 있는데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독특하고 재밌게 쓰려고 했어요. 그런 식으로 작업을 많이 했는데 반응은 시큰둥했고요. 학원을 나온 다음부터 내가 잘할 수 있고, 연출자로서 현실 가능성이 있는 소재를 고민하다가 잘 아는 것에 접근하면서 편안하게 출발해요.

 

곽라영: 영화 속 주인공은 소란스럽지 않고 유난 떨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뱉는 한마디, 작은 움직임이 더 와 닿았어요. 반면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고, 타인에게 쉽게 상처를 주는 인물도 등장하는데 스테레오 타입처럼 보여요. 주인공과 대척점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더 밀어붙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상반된 인물 구성을 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김현정: 조연(적대자)에 대한 고민을 하고 다양한 이면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지만, 짧은 단편 영화 속에 결핍이 많은 주인공을 더 부각시키려다보니 상대적으로 적대자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다만 그들의 행동이나 대사에서 비트는 시도를 하려고 해요.

 

곽라영: <입문반> 속 가영의 행동이 공감은 되지만 이해하기는 어려워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불편함으로 영화를 보다 휴게소에 우두커니 서 있는 가영을 보니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겠구나,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게 되었고요. 그제야 가영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좋다 나쁘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로 나눌 수 없는 관계-소외감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아닌 어떤 태도로 사람들을 대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했다면 <입문반> 가영의 엔딩은 달랐을까요. 엔딩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어요.

김현정: 엔딩은 처음 시나리오대로 갔어요. 가영은 관계에 결핍이 많은 채 꼬여있고, 마지막까지 스스로를 위해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한 채 그 끝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이길 바랬어요. 관계에 얽매인 인물이 자신의 모난 마음을 표출했으나 방향성을 잃어버린 상태로 끝난 것이라 볼 수 있어요.

 

곽라영: 모난 마음을 표출했다 하셨는데 연출자로서 가영의 행동에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실까요.

김현정: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가영이 지갑을 훔쳤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그건 그냥 챙긴 건데 상황이 겹쳐 그리 된 것이었어요. 잘 풀어보려고 왔는데 질투심에 충동적으로 한 행동인 거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으나 민정의 관계에 대한 방식을 알고 화가 나서 표출한 건데 표현이 덜 된 것 같아 아쉬워요.

 

곽라영: 한혜지 배우의 표정, 연기로 가영이 잘 표현된 것 같아요. 내향적인 이미지가 맞아떨어진 것 같은데 이런 배우의 이미지가 캐스팅에 영향을 끼쳤을까요.

김현정: 실제로 대면한 한혜지 배우는 밝고 건강한 이미지라서 캐스팅 당시 결정이 어려웠어요. 좀 더 어설픈 이미지를 찾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촬영을 준비하면서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조금 더 도움이 되도록 분장을 했는데 한혜지 배우도 연기에 도움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추구하는 이미지를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데 시나리오에 딱 맞는 배우를 찾긴 어려워요. 배우가 지닌 고유한 이미지와 영화 속 캐릭터가 섞이는 것이 좋다는 것을 <입문반>을 통해 깨달았어요.

 

곽라영: 서울독립영화제 제작 지원을 받아 만드신 첫 장편 <흐르다> 너무 기다려져요.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 이후 맞닥뜨린 균열을 메꾸는 아버지와 딸이 나온다.’ 하던데 인물과 상황 설정이 영화를 더 궁금하게 했어요. 그리고 여성이 아닌 남성이 전면에 등장한다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흐르다>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어요.

김현정: 궁극적으로 남자 주인공이자 아버지를 전면에 내세웠다기보다 그를 불편해하는 딸의 입장에서 말하고 싶었어요. 영화제 지원으로 제작 시기가 빠르게 왔고요. 첫 장편이었지만 코로나라는 환경적 영향과 개인적으로 작업에 대한 피로가 좀 쌓여있어서 마음을 좀 더 편안하게 가지고 접근한 작품입니다.

 

곽라영: 워크숍, 멘토링 등 영화제 지원은 어떠셨나요.

김현정: 부지영 감독님을 멘토로 지원해서 3~4개월 동안 한 달에 2번 정도 멘토링을 진행했어요. 선배 감독으로서 해주시는 조언이 너무 좋았어요. 저는 단편영화 감독으로 경력이 있지만 선배이자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된 자체가 좋았어요.

 

곽라영: 다양한 연대, 공동체가 있는데 <나만 없는 집>, <외숙모>, <흐르다>까지 가족을 선택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김현정: 익숙하고 가까운 관계에서 오는 말과 행동에 큰 상처를 받는다 생각해요. 가령 직장에서 상사의 잘못된 말과 행동은 정의하기 쉽지만, 가족, 친구가 가벼운 의도로 내뱉은 말은 감정적으로 정의하기 어렵잖아요. 속해있는 집단에서 부조리도 느끼고 직접 겪는 대상 혹은 관찰자로서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이야기가 재밌어 가족에 대해 써요.

 

곽라영: 잘 아는 대상, 관계가 아닌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은 없으실까요. 예를 들면 만들고 싶은 장르가 있으신지 해서요.

김현정: 공포영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악마의 씨>를 보고 오컬트 장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를 보고 좋은 의미로 충격을 받아 언젠가는 악마 숭배, 미신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보고 싶어요.

 

곽라영: 마지막 질문입니다. 은하비디오에서 단 한편을 본다면 어떤 영화를 선택하시겠어요.

김현정: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 영화가 좋다고 생각한 게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그 작품이 떠오르네요.

 

곽라영: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인사 부탁드릴게요.

김현정: 첫 장편 <흐르다> 개봉하면 많이 봐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