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감상
"이 영화는 모든 한국어 사용자를 위해 화면해설과 음향자막이 추가된 배리어 프리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피아노 프리즘〉(오재형, 2021)은 이렇게 시작한다. 영화평론가 박동수가 「“나”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정확히 지적했듯 보편적으로 배리어 프리 버전이 사후적으로 제작된다는 측면에서, 이런 방식은 독특하다. 〈피아노 프리즘〉에는 모든 장면에 자막이 보이고,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감독의 화면 해설이 들린다. 귀를 막아도 영화를 볼 수 있고, 눈을 감아도 영화를 들을 수 있다. 그러므로 장애―신체의 불능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인―장애는 〈피아노 프리즘〉에서는 아주 작아질 것 같다.
물론 비장애인 관객이 그것을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다. 다만 비장애인 관객인 나에게 이러한 장치는 형식으로서 흥미로웠다. 감독의 화면해설과 실제로 비치는 화면 사이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간격은 오히려 영화를 보고/듣는 감각을 첨예하게 만든다. 내가 보고/들은 경험의 단수성에 해설과 자막이 개입하면서 ‘나의 감상’을 여럿 중 하나로 상대화 할 수 있게 되고, 이러한 간격에서 영화는 오히려 민주적인 감상 방식을 허용하는 것 같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때때로 눈을 감았고 때때로 소리를 꺼보았다. 이러한 장치-형식은 외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피아노 프리즘〉은 그림을 포기하고 음악에서 화해를 맞는 한 감독의 이야기고, 그 감독이 피아노를 배우는 동안 사회의 불의를 어떻게 느끼고 반응했는지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금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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