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 반복, 나아감
‘나’는 가단빌라에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족들과 함께 살아왔다. 가단빌라는 단순히 가족들이 오랜 기간 기거했던 공간일 뿐만 아니라, 한때 가족들의 삶의 분기점이었다. 그러나 가단빌라에 살고 있는 가족들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고, ‘나’는 죽음을 생각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이내 오래된 건물 안에 버겁게 차 있는 살림살이의 모습들이 보인다. 이처럼 가단빌라라는 공간 안에 욱여넣어진 이야기들과 감정들은 차고도 넘친다. 카메라는 그 안에서 생활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담는다. 그리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다. 독백은 점차 대화가 되고, 할머니의 이야기는 엄마의 이야기로, 그리고 종국에는 ‘나’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그 속에는 이 모든 사람들을 아우르는 공통의 불행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 각자를 단절시키는 개개인의 불행이 있다.
영화는 저마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피해자 혹은 가해자로 쉽사리 구분 지을 수 없게 된 이들의 삶을 겸허히 배열해낸다. 그러면서 영화는 가족들의 일상을 기록하는 일에도 게으르지 않다. 할머니는 집안을 쓸고 닦는다. 옥상 위의 닭들을 살피거나 텃밭을 가꾸기도 한다. 엄마는 쾌활하고 장난스럽게 할머니와 ‘나’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할머니와 엄마는 돈 문제로 지겹게 다툰다. ‘나’는 할머니의 푸념을 ‘영원히 끝나지 않을 저주’처럼 여기면서도 엄마가 꿰맨 이불을 ‘포근하게’ 느낀다. 그런 일상이 돌고 돈다. 도입부에서 <가단빌라>는 촬영의 목적이 가족들이 마주해온 불행의 굴레를 들여다보는 시도임을 알린다. 그러나 영화는 삶을 기록해내며, 그야말로 삶이 굴레이기 때문에, 그 ‘반복’ 속의 염증과 안정과 웃음의 순환이 비로소 우리를 살게 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관객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마침내 ‘나’는 반복의 역사를 믿음으로써 삶을 재고한다.
이처럼 영화는 ‘확장’과 ‘반복’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삶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애쓴다.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죽음을 자주 생각하면서도 사는 일에 여전히 희망을 거는 것이 어째서 가능한지, <가단빌라>를 보면 알 수 있다. 더불어 영화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용기를 내 ‘나아감’을 꿈꾼다. 남은 삶의 많은 순간에 또 다른 불행이 도사리고 있을지라도, 순간순간 안온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결국 삶은 더디게나마 모습을 바꾸어 나간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그렇게 <가단빌라>는 삶이 가진 놀라운 힘을 애틋하게 직시해낸다.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김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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