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리뷰

<다섯 번째 흉추> 프리뷰 - 곰팡이의 미학

곰팡이의 미학

 

모든 것은 곰팡이로부터 시작된다. 막 이사한 어느 연인의 집, 그곳의 침대 매트리스에서 곰팡이가 자라난다. 시간이 지나 곰팡이 안에서 한 생명체가 탄생한다. 그 생명체는 매트리스를 따라 이곳저곳을 다니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여러 사연들을 듣게 된다. 그러나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그들의 흉추를 빼앗고, 인간의 흉추를 모으며 그것은 점점 인간의 형상을 띄게 된다.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3관왕을 하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다섯 번째 흉추는 이때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개성을 가진 한국 독립 영화이다. 어떻게 보면 전위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 독특한 바디호러물은 시청각적으로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하며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먼저 시각적으로 이 영화는 형형색색의 곰팡이를 조명과 소품으로 형상화한 특이한 미장센을 보여준다. 또한 7년이라는 긴 시간을 1시간여 되는 러닝타임에 담기 위해 시도한 현란한 편집술과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하는 영화의 촬영술은 우리로 하여금 영화에 더욱 매력을 느끼도록 한다. 이 영화의 사운드 디자인도 역시 무척이나 흥미롭게 느껴진다. 이 영화의 음악이나 효과음 같은 것들은 시각적인 경험에 더욱 특별함을 더해준다. 이 영화의 음악은 화려한 미장센과 촬영을 도와 특유의 몽환적인 느낌을 증폭시킨다. 영화의 효과음은 매트리스의 곰팡이 안에 숨어있는 생명체의 존재를 우리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이 영화의 방향성을 계속 생각하게 한다. 또한 이는 바디호러 장르로서의 느낌을 살리기도 한다.

여러모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한국 영화계에서 바디호러 장르는 흔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대담하고도 비타협적인 바디호러 크리쳐물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최근 해외에서는 다양하고도 개성있는 호러영화 신예들이 발굴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영화에서는 지난 몇 년간 그렇게 두드러진 호러 장르 영화가 크게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이 톡톡튀는 독특한 영화가 한국 호러영화의 새로운 문을 열어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본다.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김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