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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리뷰

<비닐하우스> 프리뷰 - 지금에서 비극을 만드는 법

지금에서 비극을 만드는 법 

 

작중에서 태강은 자식들에게 삶을 만드는 건 언제나 선택과 결정에 달려있다라는 말을 남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비닐하우스>는 세상에는 무릇 선택할 수밖에 없는선택지도 존재하는 법이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그 속의 인물들이 눈이 보이지 않아서,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해서 무엇을 잃어가며 살고 있는지를 장르적 화법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문정은 저 자신도 어렵게 살고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선뜻 선의를 보인다. 문정은 남들이 헷갈려하기 일쑤인 누군가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기도 하고, 아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잠시간만이라도 그 아픔을 피하거나 잊을 수 있게끔 도와주기도 한다. 그러나 문정의 선의는 왜곡되고 또 왜곡되어 생각지 못한 일들을 촉발시키고, 사건들은 서로 엇갈리며 문정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끔 한다. 전반부에서 차근차근 쌓아올려진 이야기들이 후반부에 이르러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서스펜스를 발생시키는 동안, 영화는 끊임없이 최악의 최악으로 가쁘게 달려 나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작품은 이 모든 불행을 그저 쾌락으로만 소비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비닐하우스>는 사회적인 요소들을 건드리며 어떤 삶의 비극을 세심하게 그려낸다. 더불어 영화는 삶을 견디는 것이 너무 피로해서 누군가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섬뜩한 면모를 묘사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특정한 대상만을 바라보며 오로지 그것에만 기대어 있는 삶이 얼마나 안타깝고 위태 혹은 권태로운지를 날카롭게 연출해낸다.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김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