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풍경
파로호, 한국전쟁 당시 국군은 중공군 몇 만의 시체를 이 호수에 버렸다고 한다. 파로호의 물고기들은 시체를 뜯어 먹고 자랐다고, 그래서 인근 주민들은 파로호에서 잡힌 물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도처에, 죽음이 가득하다. 알프스 모텔, 현재 파로호에 위치한 이 모텔은 한 남자와 노모가 운영한다. 노모는 치매에 걸렸고, 건강하다. 이 모텔에서 몇 달 째 몇 명이 목을 맸다. 배관에 목을 매었나? 복도에는 물이 뚝뚝 떨어진다. 경찰은 남자에게 왜 보안 카메라를 바꾸지 않았냐고 묻는다. 죽임은 확정되지 않고, 그래서 죽음은 도처에 가득할 수 있다. 모텔 바깥으로 병사들이 걸어간다. 군화소리. 위수지역의, 죽음으로 가득한 모텔. 으스스하고 기이하고 건조하지만 어디선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도처에 죽음이 가득해서 유령처럼 움직이는 사람들, 모텔 벽면에 검게 드리우는 그림자.
이것이 <파로호>의 풍경이고, <파로호>의 그들이 움직여야 하는 배경이다. 이러한 중첩들 때문에, 알프스 모텔에서 우리는 방향감각을 잃고, 거리감각을 잃는다. 하나의 미스터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파로호>가 해결의 내러티브를 띠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여기 <파로호>에는 방향도 거리도 없기 때문에, 해결을 지향하는 힘이 애초에 부재한다.
사이비 종교, 위수기관, 구식 모텔, 다방 레지, 외국인 노동자, 인력사무소… <파로호>는 이 지극히 한국전쟁 이후 미군정 그리고 급격한 산업화를 거친 이 ‘남한’이라는 땅에 닿으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성공적이었을지는, 나는 아직 모르겠다만.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금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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