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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리뷰

<모퉁이> 프리뷰 - 길을 돌아서

 

길을 돌아서

 

일상을 흘려보내다 문득 정적의 한복판에 있을 때, 어쩌면 지금의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변곡점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은 내 삶의 판도가 이미 조금씩 바뀌고 있는데도 그것이 너무나 미세한 움직임이어서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조용히 무언가 다가오고 있는데 그걸 깨닫지 못하다가 갑자기 습격을 당하면 어떡하지?

 

<모퉁이>에 등장하는 세 사람은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그러한 변곡점을 공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모퉁이에서 우연히만난 그들은 어색하게 서서 짧게 근황을 나누고 잠시 흩어진다. 그리고는 곧 다시 재회해 이 모퉁이에서 저 모퉁이로 옮겨가거나 혹은 숨어가면서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공간과 관계가 얽히고설키는 동안, 영화는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과 시간이 채 깎아내리지 못하는 어떤 이의 천성 같은 것들에 대해 함께 토로한다.

 

어떤 변화의 국면을 마주하면서 세상의 작동방식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순간이 나에게는 있었다.

삶의 미스터리가 폭력적이라고 느껴지기 시작하면, 하는 수 없이 근거 없는 믿음과 얄팍한 주술에 마음을 기대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한낱 우연에 의지해 애써 다음을 기약하면서, 혹은 그랬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입맛대로 가정하면서. 영화를 보면서 문득, 우리들은 서로 이렇게나 다른 사람들이지만 그러면서도 다들 엇비슷한 굴레 속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아주 우습게 느껴졌다. 이다음에 나는 어느 성인의 살아생전 모습을 본뜬 자그마한 기념품을 손바닥 안에서 굴리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죽어서도 좋은 일을 하시는 분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이 물건이 있어서 나는 곧 괜찮아질 것이라고 터무니없는 최면을 걸면서.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김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