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가 되어버린 ‘민주화’를 돌아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창고에서 수해로 소실된 줄 알았던 90년대 초반 민주화 투쟁 현장이 담겨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필름뭉치가 발견된다. 복원 전문가는 수해 탓에 필름끼리 붙어 있어 복원과정에서 필름이 훼손될 위험이 크다며 복원을 만류했으나 당시 사진을 촬영했던 민족사진연구회는 민주화 투쟁의 그날을 복원하기 위해 훼손 위험을 감수하며 필름 복원작업에 들어간다. 왜 이들은 훼손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이 세계를 복원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들이 복원하려 하는 것은 무엇인가. <멜팅 아이스크림>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1987년 민주항쟁을 시작으로 민주화운동이 확산 전개되면서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수많은 투쟁 일어난다. 오랜 시간 군부에 의해 자유를 빼앗겨 온 이들에게 정권 교체는 간절한 희망이자 염원이었고 그 희망은 문민정부를 시작으로 국민정부, 참여정부를 탄생시킨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얼마나 더 나아졌는가. IMF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화가 진행되면서 무분별한 시장개방과 노동유연화가 가속화되고 민주화 투쟁의 주역이었던 노동자들은 그 영광을 누릴 새 없이 다시 거리로 나서야 했다.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자화자찬 속에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가려지고 부정되어버렸다. <멜팅 아이스크림>은 이 지점에 주목한다. 민주화 투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 기억을 복원해나가는 동시에 민주화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교차해 보여주면서 우리가 그토록 어렵게 얻어냈던 ‘민주화’는 무엇이었는지, 그 ‘민주화’는 무엇이 되었는지 되묻는다.
영화는 민주화를 계승했다는 정권에서 자행된 비정규직 악법이라 불리는 기간제법·파견법 시행과 그것을 막기 위해 처절하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모습과 비정규직이 대량 양산되고 불안정한 삶에 놓인 수많은 노동자의 처참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군사독재정권 때와 다를 바 없는 공권력의 폭력이 가해지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그때와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 반문하게 된다. 우리가 쟁취했다는 ‘민주화’는 무엇이었을까. 오늘날 ‘민주화’는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뤄나가야 할 ‘민주화’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장식장에 놓인 트로피처럼 놓여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조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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