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태어나준 당신께
문득 사람을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쩌면 이렇게 흉악하고 이기적일까 싶으면서도, 다른 누구를 헤아리는 따뜻한 마음씨가 감격적이기까지 할 때도 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못됐을까,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왜 이렇게까지 착할까, 사람을 참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한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착하면서도 나쁘고 나쁘면서도 착한 사람으로 득시글한 이 이상한 지구에서, 그럼에도 섣불리 휩쓸리지 않고 따뜻한 마음을 지켜가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태어나길 잘했어>의 춘희처럼.
어린 춘희는 눈칫밥을 먹고 자랐다. 친척집에 얹혀 살아온 춘희는 극중 대사에서처럼 삶에든 땀에든 항상 절어있다. 다한증이 심한 춘희는 제 땀에 방바닥이 더러워질까봐 까치발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다니면서 그 마저도 훔쳐내기 급급하다. 제 손을 흥건하게 적신 땀이 상대방을 불쾌하게 할까봐 춘희는 함께 추는 춤을 혼자만의 것으로 바꾸어 연습해야만 했다. 있어도 없는 것처럼 제 족적을 지워야만 했던 사람, 아무도 머물지 않던 곳에 수납되듯 숨겨져 사람들 틈에 섞일 수 없었던 사람, 그것이 바로 춘희다.
그러던 어느 날, 춘희 앞에 과거의 춘희가 나타난다. 기이한 조우도 잠시, 과거와 현재를 교차 혹은 중첩시키며 춘희는 유년의 서러운 얼굴을 마주보고자 한다. <태어나길 잘했어>는 춘희를 대책 없는 낭만이나 맥락 없는 명랑에 던져놓지 않는다. 영화는 그저 담담하게 춘희가 스스로를 보듬는 과정을 그려낸다. 우리들은 영화 속 춘희를 지켜보면서, 춘희가 자신을 살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정직하고 성실하게 현실을 감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고, 연약하게 흔들리는 그 무엇을 가벼이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며, 각자의 고난을 따뜻한 시선으로 살펴볼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살아가다보면 종종 어린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초라한 행색으로 졸아붙은 어린 나를 다그치는 대신, 이제껏 수많은 부당함을 견뎌내고 자신을 떠메고 사느라 너 참 고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우리는 어쩌면 춘희를 통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김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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