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아래의 인간(들)
<복지식당>은 홀로 법정에 선 중증장애인 재기 (조민상) 의 조용한 외침으로 시작한다. 교통사고를 당해 몸의 대부분을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지 못하는 그는 1급 장애인, 못해도 2급 판정을 받아야 마땅하나, 국가는 그를 5급으로 판정하고 그때부터 이미 부서진 상태였던 그의 삶은 다시금 조각나기 시작한다. 절망에 빠진 그에게 같은 장애인인 병호 (임호준) 가 접근해 이런저런 도움을 주지만, 도움 뒤편으로 그는 홀로 아들을 키우는 재기의 누나 은주 (한태경) 에게 음흉한 시선을 던지고 있다.
세상 그 어떤 밝은 조명이라도 그 빛이 미처 닿을 수 없는 사각지대가 존재하듯이, 인간의 지식과 경험으로 고안된 정책과 제도는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낙오된다. 영화는 장애인들에게 하등의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제도의 모순과 불평등을 다루는 한편, 장애인들이 실생활에서 겪어내는 삶의 현실과 그들을 대하는 주변인들의 시선 · 평가를 함께 담아냈다. 장애인인 정재익 감독, 비장애인인 서태수 감독은 정재익 감독 본인의 경험이 상당 부분 반영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공동 작업을 진행해 영화를 완성했다.
아무도 없는 법정에서, 재기는 판사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한다. “부디 제가 자립해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이라 말하는 그의 마지막 음성은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끝내 발화되지 못한, 전해지지 못한 그 미완의 문장을 완성하는 것은 어쩌면 그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역할이다. 인간다운 삶, 그것을 완성하는 것들. 그리고 그 삶을 향해 오늘도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이 땅의 모든 재기들을 생각하는 하루다.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최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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