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바라보기, 움직이기
<수라>가 우리를 죄인으로 만드는 데에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무기는 다름 아닌 아름다움이다. 이 영화가 역설하고 있는 아름다움이란 곧 공간을 매우는 존재들의 움직임인 듯하다. 그건 자신의 생활을 안온하게 이어나가고자 하는, 그리하여 다른 이의 생활도 그토록 안온하기를 꿈꾸는 존재들의 움직임이다.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이 닥쳐올 때에, 이들은 이따금 주저하더라도 내일은 더 나아질 것을 기도하면서 조금 더 움직여볼 것을 결심한다.
각 쇼트가 담고 있는 저마다의 생명들, 그리고 그것들이 움트는 공간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들은 죄책감에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대신 그보다도 더 경이로운 사명감으로 무장하게 된다. 그건 <수라>가 존재들의 목마름을 가늠하며 그들 각자를 또렷한 목소리로 호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아니었더라면 미처 알지 못했을 것들을 하나하나 눈에 새겨낼 때에, 너희들의 이름과 모양, 그리하여 결국 존재를 인지했기 때문에 영원히 이 서글픔을 잊지 못할 것이라는 기쁜 예감에 휩싸인다. 몰라서는 안 될 것, 혹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을 마침내 다시금 마주한 느낌, <수라>의 사려 깊은 다정함이 만들어낸 감각이다.
공간을 좀 더 세심하게 바라보는 시선, 섣불리 폐허라고 치부하는 것을 경계하고 존재를 또다시 들여다보는 힘, 믿음으로써 희망을 만들어내는 과정, 나는 이 영화에 담긴 모든 행위들의 신성함을 가슴깊이 존경한다. 이러한 거룩함은 ‘수라’를 쉬이 지나치지 못하게끔 사람들을 꼭 붙들어 놓을 것이라고 믿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충만해지는 감각으로 우리들은 ‘수라’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꺼이 죄인이 된다.
세상이 ‘부드럽고 따뜻한’ 곳이라고 믿을 수 있게 해주는 이런 영화는 정말이지 너무나 귀하다. 몇 번을 강조하여도 부족함이 없다. 나는 무언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는 빛이 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 만든 영화를 보면 나조차도 잠시간 빛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빛나는 생명, 빛나는 공간, 빛나는 영화는 관객 역시 찬란하게 만든다.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김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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