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위에서
<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작품인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은 섭식장애를 주제로 다이어트와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고통받는 20대 여성의 삶을 단편적으로 들여다보는 대신, 그 내면을 한국 사회에서의 모녀 관계와 그것을 회복하려는 시도로 아주 대범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전작부터 관심을 가져온 여성의 몸에 대한 시선은 이번 영화를 통해 더욱 확장되어 한국 여성의 삶에서 끈적하게 얽힐 수 밖에 없는 엄마와 딸 사이를 파고든다. 섭식장애를 가진 딸을 받아들이기 힘든 엄마의 말과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살기 위해 애쓰는 딸의 말은 영화 속에서 아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는 듯 하지만 상옥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둘 사이의 관계는 평행선에 놓여있는 듯 보인다.
그래도 나란히 속도를 맞춰 그 평행선 사이에서 나아갈 수 있다면. 그곳에서 작고 작은 희망을 볼 수 있다면. 그 평행선을 만드는 흡입력 있는 대화 속에서 상옥와 채영의 삶을 드러낼 때, 도대체 어떤 신뢰가 있었기에 이런 내밀한 이야기까지 카메라 앞에서 나눌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단순한 인터뷰가 아니라 살고자 하는 의지였고, 그 의지들이 모여 만들어진 치열한 발악이었다. 우리는 평행선이지만 이렇게 살아가고 호명한다. 주인공들의 삶의 굴곡과 그것을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담아내려고 노력한 감독이 만나 만들어낸 수작.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임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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