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남은 것
우리에겐 같은 기억이 있다. ‘수학여행’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수년 전 어느 날이 떠오르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너와 나>의 하은은 다리를 다쳐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 세미는 하은과 함께 수학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결국은 혼자 떠나게 된다. ‘수학여행 다녀와서 꼭 맛있는 거 먹자.’ 세미가 하은에게 쓴 편지에 남은 약속은 여전히 약속으로만 남아있으리라는 걸. 우린 모두 알고 있다.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던 <너와 나>의 후기엔 하나같이 울음을 참지 못했다는 말들이 가득하다. 그건 아마 영화가 우리의 마음을, 그리고 기억을 건드리기 때문일 거다. 수학여행에 들뜬 아이들이 옷을 사고 짐을 싸고 장기자랑을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갔다 올게.” 건네는 평범한 인사를 보면서. 마치 내 고등학교 시절을 뚝 떼어다가 스크린에 옮겨놓은 듯한 일상을 보면서. 그때 그 나이에만 가질 수 있는 해맑음과 말다툼과 감정과 장난을 보면서. 우린 기분 좋게 웃다가도 별수 없이 떠난 이들과 남겨진 이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한 편으론 이 영화가 떠난 이가 남겨진 이에게 보내는 안부 인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쁜 꿈이었으면 하는 어떤 일 뒤에 혼자 남은 하은이 걱정된 세미가 하은의 꿈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온 것만 같다. 다 괜찮아질 거라며 어깨를 토닥여주고, 하지 못한 사과를 전하고, 사랑한다고 고백하려고 말이다.
하은이 없는 세미는 어디에 있어도, 누구와 있어도 혼자다. 세미가 사라진 세상의 하은도 그렇다. 이 사랑은 너와 내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두 사람은 다르게 보이다가도 완전히 같다. 묶은 머리의 모양도, 가방에 단 인형도, 서로를 향한 마음도 전부 다. 그러다 보니 ‘너’와 ‘나’ 중 어떤 게 세미이고 어떤 게 하은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세미와 하은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건 두 사람이 혼자 있어도 언제나 함께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세미와 하은의 사랑은 떨어질 듯 위태롭게 놓인 물잔도 신경 쓰이지 않는 것, 이어폰 하나만으로도 한참을 웃게 되던 것으로 시작되었다. 세미와 하은의 사랑은 손님이 두고 간 유리컵을 보고도 그 애를 떠올리는 것, 늘 함께 타던 버스에 앉아 노을을 보면서 그 애를 생각하는 것으로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러니 <너와 나>는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다.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박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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