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무대로 혹은 과거에서 현재로
<붉은 장미의 추억>은 1962년 발표된 노필 감독의 동명의 영화를 지금에 이르러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필름이 유실되어 시나리오만 남아있었던 노필 감독의 <붉은 장미의 추억>은 코로나 이전 낭독극으로 기획되어 축제에서 공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예측할 수 없었던 재난 속에서 낭독극은 영화라는 새로운, 동시에 그리운 형식으로 다시금 불러들여졌다.
영화는 단순히 진행되고 있는 연극을 기록 혹은 녹화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인물을 개입시키고, 분절된 쇼트에 인물을 필요에 따라 배치시키면서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 무대를 배경으로 영화적인 장치를 더해낸 이 작품은 무대의 안팎을 동시에 아우르고, 새로운 인물로 하여금 영화와 무대를 넘나들게 하면서, 연기와 소리, 색과 편집,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의 힘을 역설한다. 이 모든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연극 무대와 영화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지에 대해 연출가와 연기자가 많은 고민을 거듭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영화는 창작자가 작품에 쏟는 노력과 몰입의 기억들을 발췌해내고자 시도하면서, 과거의 작품에 대한 단순한 소환이 아닌 저 자신만의 해석을 개입시킨다. 그리하여 재해석된 <붉은 장미의 추억>은 망각에 대한 두려움과 속절없이 흘러가버리는 시간에 대한 애수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예술가의 세월에 엄숙한 존경을 표하고, 그들이 예술을 대하는 애틋한 마음들을 소중하게 담아내는데 성공한다. 그리하여 영화에서 연극으로, 또 그곳에서 마침내 다시 영화로 이식되어가는 이야기의 여정은 아련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흥미롭게 흘러간다.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김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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