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에 대하여
한국을 외국인 손님들에게 소개하는 일이 영광스럽고 보람되며, 또 돈을 많이 벌어 잘 살고 싶습니다.
왜 관광통역안내사에 지원했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한영이 했던 대답이다. 한영은 한국에서 지낸 시간 동안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한다는 자긍심은 잊고 말았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어 잘 살게 된 것도 아니었다. 처음 이 일에 뛰어들었을 때 가졌던 마음은 모두 놓치고 면접 때 스스로 언급했던 관광통역안내사의 금기사항은 죄다 저지르게 된다. 그게 과연 한영의 잘못일까. 영화를 다 본 사람들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감각. 그게 얼마나 춥고 외로운 것일까. 마치 핸디캡을 안고 시작하는 경기 같다. 체급 차이가 큰 상대와의 싸움 같다. 끝내 해결하지 못할 미션 같다. 내 편이 없다는 것은 곧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한영은 그 가운데에 놓인 사람이었다. 탈북민 한영은 낯선 한국 땅에서 중국인들을 상대하는 일을 한다. 뉴스를 틀어놓고 열심히 연습한 한국 표준 억양보다 중국어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봄과 가을은 한영의 고향이나 잠시 머물렀던 중국보다 아마 더 따뜻했을 건데, 한영은 늘 목도리를 두르거나 두꺼운 털모자를 쓴다. 한영의 추위는 날씨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닌 모양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한영을 안쓰러운 대상으로 그려내지는 않는다. 조금의 부풀림도 없이 한영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시간을 보여준다. 한영이 일상을 살아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그러나 문득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맞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한영은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내가 한영의 삶을, 노력을, 최선을 안타까워하는 게 과연 맞는가.
나는 그저 한영이 찾길 바라게 되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삶 말고 자기를 위해 사는 삶을. 친구 정미와 있을 때처럼 먹고 웃고 놀고 춤을 추기에 바쁜 삶을.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박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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