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삶 속에서의 얼굴들
딸 하나를 둔 이혼남인 주인공 윤철은 조각과 인테리어 일로 근근이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의 딸, 지나는 역시 그를 닮아 미술에 뛰어난 소질을 보이지만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한편, 윤철은 대학 강사로 일하는 영지를 만나 큰 호감을 느낀다. 그런 와중에 딸은 대학에 가는 것까지 포기하고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영화 내내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고요하고도 격렬한 사건들은 그를 절대로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이 영화가 놀라운 부분은 이런 주인공 주변의 요동치는 상황들을 극화하지 않고 굉장히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 주변의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겪어내는 주인공의 내면이고 그 사건이 주는 여파의 정서이다. 결국 주인공이 사건으로부터 얻는 감정의 실타래를 푸는 과정에서 이 영화의 진정한 클라이맥스는 시작된다.
연기를 보는 매력도 상당하다. 이 영화는 연기에도 과장이 없다. 이 영화의 중추를 담당하는 배우는 아마도 윤철을 연기한 박종환 배우일 텐데, 삶의 무게를 견뎌내면서도 주변 상황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삼켜내는 단단하면서도 넘실거리는 나무같이 우뚝하게 캐릭터를 연기한다. 지나를 연기한 이연배우도 이 영화를 위해 삭발을 할 정도로 영화에 헌신하고 있는데 초반부에는 이연배우 특유의 생활 연기가 돋보이고 후반부에는 막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된 어떤 여성의 느낌을 잘 살린 새로운 연기를 또 보여준다.
여러모로 유려한 작품이다. 영화의 제목인 “절해고도”가 뜻하는 것처럼 이 영화는 ‘바다 건너 외로운 섬’을 묵묵히 바라보는 영화이다. 삶을 살면서 묵은 감정들을 흘려보내고 새로운 삶의 관계속에서 마음을 해갈하는 어떤 단독자의 여정을 보다보면 우리도 안개 속 저 편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어떤 빛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김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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