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힘을 믿는 사람들
'생츄어리'는 회귀 불능의 야생동물이 살아갈 수 있는 시설을 의미한다. 영화는 국내에는 현재 '생츄어리'라 부를 수 있는 시설이 단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을 역설하며 극을 시작한다.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생츄어리'의 설립을 소망하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생츄어리>는 자신의 이야기가 죽음에서부터 출발한, 혹은 죽음에 대한 것임을 명백히 드러내려는 듯 수많은 죽음들을 또렷이 응시한다. 그리고 이 영화의 카메라가 그러한 것처럼, 죽음의 모든 과정을 정면에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음을 제시한다. 미약한 숨소리가 잦아들고 그 사체가 수습될 때까지, 무수히 많은 죽음의 과정을 마주한 사람들은 간절히 '생츄어리'를 소망하게 된다. '생츄어리'를 꿈꾸는 이들은 동물 안락사에 관한 기존의 관행에 의문을 던지고, 죽음들을 유보시키고자 노력하고, 우리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탐색하고자 한다.
'생츄어리'에 대한 열망이 극의 말미에 어떤 결과를 마주했는지를 잠시 떠나, 사람들이 '생츄어리'로 다가서는 과정에 대해 말하고 싶다. 최선의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들의 사려 깊은 태도, 이상과 현실을 동시에 주시할 수 있는 현명함, 그리고 난관 속에서도 섣불리 포기를 말하지 않는 강건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힘든 과정을 생각하다가 쉬운 결정을 내려 버릴까 봐”,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쉽게 타협하게 될까 봐”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의 거친 낯은 처연한 만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고 나면, 죽음을 직시하고 그 죽음에서부터 삶을 생각할 줄 아는 이들의 용기가 결국 세상을 바꿀 것을 누구라도 믿게 될 것이다.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김주리
'상영작 프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프리뷰 - 남겨두기 위해서 (0) | 2024.06.18 |
---|---|
<다우렌의 결혼> 프리뷰 - 이름을 잘못 명명한다는 것 (0) | 2024.06.11 |
<다섯 번째 방> 프리뷰 - 두 여자의 의지 (0) | 2024.06.03 |
<늦더위> 프리뷰 - 청춘의 풍경 (0) | 2024.05.20 |
<미지수> 프리뷰 - 텅 빈 원을 채우기 (0) | 2024.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