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판 위의 여자들
여자 씨름계의 ‘이만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만기라는 인물도 젊은 세대에서는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많겠지만, 여자 씨름계에는 누구에게나 전설적인 인물로 평가되는 임수정 선수가 그 별명의 주인공이자 이 영화의 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심인물이다. 임수정 선수는 2009년 처음으로 여자 씨름 종목에도 전 종목 통합 천하장사가 생긴 후, 가장 많은 천하장사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종목의 최강자가 있다면, 최강자를 뒤따르는 강력한 라이벌이 있기 마련이고, 또 그를 바라보고 성장한 후배들이 있기 마련이다. 최강자가 나오기 전 기틀을 닦아두었던 선수도 든든한 선배이자 어른으로 존재한다. 스포츠는 단순히 한 사람의 인기와 실력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는 법이다. 영화 <모래바람>은 비인기 종목인 씨름 그중에서 여자 씨름 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이며, 씨름을 사랑하고 씨름에 울고 웃는 여자 선수 5명을 조명한다. 2015년 최초의 여자 실업 씨름단으로 창단한 콜핑 팀을 박재민 감독이 5년간 카메라에 담아냈는데, 제작 과정 중에서 일어나는 선수들 간의 다양한 감정들과, 이적 그리고 팀의 해체까지 각 인물들의 시각을 담아 시간 순대로 흐른다. 2009년 최초의 천하장사 타이틀을 얻었던 임수정은, 2023년에 다시 천하장사가 된다. 누구에게나 간절해지는 모래판.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선수들의 모습에 큰 울림이 있다.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임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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