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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작 프리뷰

<언니 유정> 프리뷰 - 어떤 자매

 

어떤 자매

 

 유정은 심장내과에서 일하는 간호사다. 유정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 낮과 밤이 바뀐 생활 때문에 잔뜩 지친 채 산다. 유정은 해가 뜬 뒤에야 퇴근하여 텔레비전을 보다가 거실 소파 위에 웅크려 잠이 든다. 유정에게는 하나뿐인 혈육, 열여덟 살 동생 기정이 있다. 기정은 혼자 학교에 갈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에 유정이 붙여둔 용돈 2만 원을 챙겨 집을 나선다. 두 사람은 함께 살지만, 마주치지 못한다. 어느 날, 유정은 기정이 잡혀 있다는 연락을 받고 경찰서로 향했다. 기정의 죄목은 영아유기치사였다.

 

 이 설정 하나만으로 우리가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유정과 기정의 관계. 한 집에 살면서도 기정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임신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두 사람은 먼 사이였던 거다. 유정은 이 사건을 계기로 기정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기정이 평소엔 어떤 아이였는지, 친한 친구는 누구였는지. 기정의 학교에 찾아가고, 기정의 선생님들을 만난다. 그 과정에서 유정은 다시금 기정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절실히 깨닫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가 느슨하다는 것이 유정에게 기정이 소중하지 않다는 말이 되는진 잘 모르겠다. 유정과 기정 사이에는 무심함 말고 또 다른 것들이 있다. 한시라도 빨리 눈을 붙이고 싶은 마음뿐일 유정이 거실에서 불편하게 잠드는 이유. 피곤한 언니를 위해 조용히 텔레비전을 끄는 기정의 마음. 아마 유정은 현관문에 붙여두었던 2만 원이 사라진 것을 보고서야 방으로 들어갔을 거다. 이건 기정을 챙기는 유정의 방식이지 않았을까. 유정은 기정에게 엄마의 역할을 해줄 수는 없다. 유정은 그저 기정의 언니일 뿐이니까.

 

 <언니 유정>은 영화를 본 뒤에도 많은 지점을 되새김질하게 만들었다. 가족 안에서의 관계, 엄마와 뱃속의 아기를 대하는 상반된 상황, 유정과 기정을 향한 묘한 불친절함까지. 생각들은 또 여러 의문을 만들어내곤 했는데, 그중 가장 강렬하게 머리를 채웠던 것은 왜 기정은 아무도 걱정해 주지 않는가.’였다. 기정도 겨우 열여덟인데, 가해자이기 전에 어린 학생인데, 당장 오전까지 자신이 가르쳤던 아이일 텐데. 기정을 걱정하는 어른은 유정밖엔 없었다. 그렇다면 연차 한번 편하게 쓰지 못하는 삶을 견디는 유정은 누가 걱정해 주려나.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박정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