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에 대한 맹신과 악의 손길들
혜정(김선영)은 시위의 흔적들을 긁어내고, 새집으로 향한다. ‘드림팰리스’라는 이름의 신축아파트에서 혜정은 자신의 아들인 동욱(최민영)과 함께 이전과는 다른 삶을 꿈꾼다. 하지만 동욱은 계속 과거 혜정이 몸담았던 유가족 텐트로 향하고, 혜정은 불가피하게 자신이 떠난 사람들과 마주친다. 특히 수인(이윤지)을 마주할 때 혜정은 유독 더 어색해진다. 수인은 자신과 같은 ‘길성 하이테크’의 화재사고에서 남편을 잃고, 자식을 홀로 책임지는 한부모 가정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드림팰리스>는 불가피하게 긴장의 순간들을 마주해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혜정은 자신의 가정을 위해 ‘길성’과 합의하고, 함께 시위하던 유가족들을 떠났지만 동욱으로 인해 다시 되돌아온다. 또한 이사 온 드림팰리스에서조차 녹물이 나와 아파트담당 본부장인 용민(김태훈)과, 입주민회의 회장인 인모(김용준)를 만나 그것을 해결해달라고 설득하지만 아무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 혜정은 그 일련의 과정에서 물질들과 함께 한다. 혜정은 처음 입주민회의에 갈 때는 떡을, 용민을 다시 만날 때는 그와 그의 부하직원들에게 음료수를 건넨다. 동욱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동욱이 집으로 들어오지 않겠다고 말하자 혜정은 자신의 아들에게 택시비를 건넨다. 이러한 등가교환의 소통의 방식은 비단 혜정만 취하는 것이 아니다. 입주민들은 자신들의 집값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길성’은 자신의 일터에서 사고로 죽은 이들을 합의금을 해결하려 하고, 유가족조차도 잠시 부재한 수인을 대신해서 그의 아들 성민(오자훈)에게 시위 때 쓰였던 비용을 청구한다. 오랜 싸움을 버텨오던 수인도 이러한 세상의 물질성에 흔들린다. 자신의 아들인 성민과, 딸인 주희(정서연)를 지키기 위해서는 결국 물질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죽은 자들은 현존하지 않기에 비물질적이고, 살아있는 자들은 그렇기에 물질적이다. <드림팰리스>에서 볼 수 없는 자들의 존재는 그렇게 물질들에 의해 점점 잠식되어간다.
<드림팰리스>가 물질의 악마성에 관한 이야기라는데 동의한다면 이와 관련해서 또 하나의 영화를 언급하고 싶다. 그것은 로베르 브레송의 <돈>(1983)이다. <돈>은 현대의 등가교환의 법칙을 손에서 손으로 전달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보여줌으로서 물질의 악마성에 관해 고발하는 영화였다. 그렇지만 <드림팰리스>는 그 과정이 대다수 얼굴에서 얼굴로 이어진다. 하지만 <드림팰리스>에서 우연히 손들이 중심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브레송을 <돈>처럼 손을 가까이에서 담지는 않지만 입주민 회의에서 혜정의 말에 반기를 들며 인모가 다친 손을 올릴 때, 그리고 정환(류성록)이 장례식장에서 ‘길성’이 보낸 화환을 손으로 질질 끌고 나갈 때이다. 인모의 다친 손은 곧 일어나는 움직임으로 인해 인모의 얼굴로 대체되고, 정환의 손은 ‘길성’이 보낸 화환을 정환이 끌고 나간다는 정보에 목적으로 그 장면을 찍었을 것이다. 하지만 찍고자 찍은 것이 아닌, 불가피하게 손이 중심이 되게 찍힌 순간들에서 그 손들의 형태와 운동성은 개인적으로 인물들의 얼굴보다도 더 무섭게 감응이 되었다. 손이 출연하는 그 우연의 순간들. 그것들은 분명히 카메라가 인물의 얼굴을 잡고 있음에도 종종 프레임을 휘 젓는다. 대다수 그것은 현 상황들에 대한 분노의 표출, 즉 폭력의 형태로 말이다. 또 하나의 손길이 있다. 그것은 혜정의 손에서 주로 발견된다. 물질을 주고받기도, 때로는 똑같이 분노를 맞받아치기도 하던 혜정의 손은 자신이 처한 현실들을 점점 감당하지 못하며 가만히 있게 된다. 그러나 외부의 손길들은 점점 몸의 하부가 아닌, 상부로 옮겨지며 얼굴들에 종종 출연한다. 그것이 이윽고 폭력의 형태로 번져 혜정에게 다가올 때 혜정은 자신의 얼굴을 감싼다. 그때 혜정의 얼굴은 혜정 자신의 손으로 가려진다. 이윽고 공포의 순간이 지나가고 혜정이 자신의 손을 내렸을 때, <드림팰리스>의 이때동안 추구해오던 얼굴들의 만남은 이제 긴장조차도 일으키지 못한다.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류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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