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자각한 자의 자유.
주희(김주령)는 암의 가능성에 대한 선고를 받는다. 그 확률은 10명중 1명꼴인 10%의 희박한 확률이지만, 주희는 불안해한다. 병원을 빠져나온 주희는 자신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학교로 돌아오지만, 여전히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호진(문호진)은 연극을 준비하며, 배우들에게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의 감정을 설득시키는데 애를 먹고 있다. 배우들은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들에 대해 각기 다른 해석들을 내놓는다. 어쩌면 호진조차도 자신이 쓴 인물의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주희와 호진은 부부였던 사이다. 한때 서로 사랑했던 두 사람은 이제는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들에게 던져진 현실들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주희가 죽음이라는 관념에 잠식되어갈 때, 그녀에게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학생들, 동료교수, 가족들 등, 그들은 각기 다른 화제들로 대화를 유도함으로서 주희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잠시 유보시킨다. 하지만 주희의 마음속의 불안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주희가 아무리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도 이미 그녀를 감싸고 있다. 동시에 주희를 감싸고 있던 어떤 부분들이 벗겨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으로써 그녀는 자신을 찾아오는 타인들과, 그들과 나누는 대화들에서 느껴지는 자신의 감정들에 더욱 감응하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는 주희의 아름다운 행동들로 이어진다. 특히나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에서 나오는 두 번의 포옹들. 이 아름다운 순간들은 어쩌면 주희가 죽음을 자각하지 못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지도 모른다.
호진의 연극은 어쩌면 주희와의 관계 속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된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암시가 흐른다. 호진과 주희의 관계는 끝났다. ‘끝’이라는 단어를 다른 말로 표현해보자면 그들의 관계는 죽었다. 호진은 주희와의 관계의 죽음 이후에 다시 그것을 자신만의 형태로 재창조하고 있다. 그 형태는 이미 죽어버린 것을 다시 되살릴 수도, 완벽하게 재창조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호진은 그렇게 자신의 ‘예술’을 한다. 호진의 연극에서 ‘자유를 얻어야 죽음을 이겨낼 수 있다’는 구절이 있다. 그 말을 내 식대로 바꿔보자면 ‘죽음을 자각한 자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는 그렇게 죽음을 통해 얻은 자유의 아름다운 순간들에 관한 영화다.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류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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