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후의 시간과 남은 틈
영화를 보다가 조금 당황했다. 영화가 시작한지 고작 4분 남짓 되었는데, 얼굴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명지(박하선)는 남편의 시체를 확인하러 간다. 관객인 우리가 남편의 얼굴을 알기도 전이다. 명지의 이야기도 명지와 가까워질 시간도 없었기에, 그의 우는 얼굴이 화면을 가득 메워도 무언가 의아한 기분만 남는다. 이 빈틈. 남편의 얼굴, 이름이 도경이라는 점(전석호) 그리고 그의 성격을 알게 되는 것은 모두 차후의 일이다. 차후의 일과 회상이 빈틈을 어느 정도 메우지만, 영화 내 명지-도경의 시간은 잠깐으로 메우기에는 너무 크다.
차후의 시간과 남은 틈.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해결되지 않은 시간을 여러 방식으로 보여준다. 정신적인 문제는 지은(정민주)에게 마비를 갖고 오고, 명지(박하선)에게 비강진을 겪게 한다. 명지의 우는 얼굴처럼 화면에 뚜렷하게 존재하는 실물보다 커다란 육체에는 정신의 잔해, 시간의 지연이 남아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가 환기하고야 마는 하나의 사건인 세월호 그리고 그 후의 수많은 사고들과 우리 시민이 맺고는 했던 감각 같다. 당사자들에게 그 감각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 그리고 우리 시민의 기억력은 너무 짧다. 그래서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오래도록 유효하리라.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금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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