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그 너머를 보다
2020년 <퀴어의 방> 이라는 작품으로 성소수자들의 공간을 향한 열망과 여정을 들여다보고, 소소하고 지속적인 투쟁의 모습과 공간을 통한 연대를 담아냈던 권아람 감독의 새 작품 <홈그라운드> 를 대구에서 소개드릴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이 작품은 나로써는 기다려온 주제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종로나 이태원을 대표하는 게이들의 공간은 성소수자 문화를 대표하는 곳으로 여겨지지만 레즈비언들의 공간은 탄생과 사라짐의 주기가 짧아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속 신촌공원의 아련한 기억처럼 내가 존재했던 것인지 꿈인가 흐릿해지기도 하고, 대구에서 간간히 스쳐지나왔던 그 공간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떠올리기도 한다. 완전히 변해버린 신촌역 앞에서 허전함과 무색함을 느끼듯이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공간을 둘러싼 수많은 관계와 중력을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만든다. 그런 시기에도 1990년대 부터 끊임없이 레즈비언들의 안전한 공간으로 남아있는, 레즈비언들의 섬 <레스보스> 에는 명우형이 있다. 이 이야기는 바지씨와 명우형의 이야기이며 언제나 그 곳에 있을 것만 같은 안식처의 이야기이며 공간에서 작동하는 퀴어공동체의 이야기이다. 사라지는 건 쉽고 살아남는 건 어려운 퀴어의 삶 속에서 지금의 퀴어공동체는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 공간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응원하는, 또 그런 공간을 스크린에 담아내는 시도들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임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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