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과 시인
한 화가가 있습니다. 그는 1971년 첫 번째 물방울을 그린 이후로, 단 한 번도 다른 것을 그린 적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 그의 아들이자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의 감독인 김오안은 영화 속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물방울을 하나 그리는 건 하나의 구상이지만, 백 개 또는 천 개의 물방울을 그리는 건 계획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만 개의 물방울을 십 만 개의 물방울을 그리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이런 종류의 예술을 선택할 수 있을까? 단순한 인내심이 필요한가? 엄청난 야심일 수도 있을까? 어쩌면 조금 미쳤을까? 아니면 강렬한 신비로움인가?”
그리고 프랑스의 한 철학자는 광인과 시인을 이렇게 구분했습니다. 그의 구분에 따르면 광인은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범위 내에서만 다른 존재이고, 도처에서 닮음과 닮음의 기호만을 보는 자”, 시인은 “명명되고 언제나 미리 규정된 차이 아래 파묻힌 사물들의 친근성, 흩어져 있는 사물들의 유사성을 다시 찾아내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한 화가는 광인과 시인 둘 중에 속하는 걸까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이 질문들 속에서 시작합니다. 비록 영화의 감독자 중 한 명이 아들이지만, 혹은 아들이라서, 이 질문들이 의외의 위치: 가령 한국의 역사로 향하기도 합니다. 물방울과 한국의 역사. 어떤 역사? 떨어지는 포탄, 럭비공처럼 수축된 민간인의 시체. 그리고 물방울.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금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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