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한 4가지 담론과 반응
제목 그대로 ‘기기묘묘’한 4편의 단편들이 한데 모인 영화 <기기묘묘>는 단순히 영화 속 세계가 기이하다는 공통점만 공유하지는 않는다. <기기묘묘>의 단편들은 모두 죽음의 이미지가 도사린다. 거기엔 시체를 묻어주려는 시도를 하고(불모지), 죽은 어머니의 유령을 보기도 하고(유산), 자루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하며(청년은 살았다), 과거 어떤 죽음의 파장을 막으려고도 한다(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꽤나 거대한 담론부터 너무나 사적인 영역까지 <기기묘묘>에서의 죽음의 형태는 각기 다르지만 어쩌면 작품들 속 인물들이 감응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기기묘묘>속 인물들은 자신 앞에 닥쳐오는 것들에 불안해하며, 더 나아가 두려워한다. 그리고 자신 앞에 놓인 사건들이 너무나 비가시적이라는 점에서, 쉽게 말해 다른 이들이 쉽게 주인공들이 보는 것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고독하기도 하다. <기기묘묘>의 4편의 단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가치들은 그 비가시적인 것들을 보려는데 있다. 명확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존재하는 무엇인가들에 대한 시선. <기기묘묘>는 그 시선에 대한 담론이다.
또한 <기기묘묘>는 그 담론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 스릴러와 호러의 장르를 띤 4편의 단편들에서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보려는 시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것에 감응하는 인물들의 반응이다. 스릴러와 호러만큼 인물의 반응 쇼트들이 중요한 장르는 어쩌면 없는 것 같다. <기기묘묘>속 인물들의 표정과 행위는 대부분 주체적이지 못하다. 주체적이라고 생각하는 행위마저도 어떤 것들에 대한 반응인 경우가 대다수다. <기기묘묘>는 그러한 수동적인 표정과 행위에 관한 영화이다. 첫 번째 단편 <불모지>를 제외한다면, <기기묘묘>는 많은 순간 어떤 무력함에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그 나아가지 않음이 현실이고, 그 무력한 인물들의 얼굴과 행위들을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이 4편의 감독들이 아직 재능을 완전히 피우지 못한 신인감독들이라는 점에서 보면 어떤 기대감이 생긴다. 후의 작업들에서, 그것이 지금과 같은 스릴러나 호러의 장르든 그렇지 않든 지금 그들이 보는 세상에서 무력함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리고 <기기묘묘> 속 자신들의 초기작이 그 발견을 위한 과정이 아닐까 하는. <기기묘묘>가 그 재능들의 시작점이길 바란다.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류승원
'지난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프리뷰 - 광인과 시인 (0) | 2022.09.26 |
---|---|
관객프로그래머 초이스! <장영선 감독전> 추천사 - 침전해버린 즐거움을 찾아서 (0) | 2022.09.23 |
<썬더버드> 프리뷰 - 남성과 여성. 이분법의 장르영화. (0) | 2022.09.21 |
<달이 지는 밤> 프리뷰 - 삶과 죽음 사이의 (0) | 2022.09.19 |
<둠둠> 프리뷰 - 불안과 고조 그리고 해소 (0) | 2022.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