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전해버린 즐거움을 찾아서
분명 영화를 보는 즐거움에도 여러 종류가 있을 것이다. 그 다양한 즐거움 중에서, 장영선 감독님의 영화들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의 고유한 색깔이 있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자꾸만 이다음의 발화를 기다리게 되는 대화 장면. 로맨스의 핵심인 시선을 예리하게 잡아채는 세심함. 클리셰를 유쾌하고 영리하게 활용하는 방식. 장르의 관습을 단조롭고 진부한 것이 아니라 변용의 재료로 탈바꿈시켜 러닝타임을 가로지는 감각. 스크린 속 인물들이 터무니없는 행동을 실행해버릴 것만 같아서 조금쯤 떨리게까지 만드는 힘. 나는 이러한 것들이 감독님의 영화에 담겨있다고 생각하고, 이것들을 눈치 채고 곱씹는 것이 못내 즐겁다.
영화의 유쾌함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은, 영화 속 세계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부드러운 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누군가는 섣불리 누구를 상처주려 하지 않고, 또 다른 누군가의 결핍은 사실 상처받지 않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때가 많다. 영화는 뾰족하게 마음 한곳을 찔러 오래오래 아프게 하는 게 아니라,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지 않게 단단히 받혀주면서 보편적인 감각에 기반해 편안한 즐거움을 건네준다.
나는 이 네 편의 단편영화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웃음을 지을 수 있다. 감히 짐작하건대 아마도 쓰는 사람도 찍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영화를 만들고 보는 모두가 즐거웠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을 영화는 아주 귀할 것이다. 영화를 떠올릴 때에 실실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절친한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다는 바람, 거기에서 이 기획전은 시작됐다.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김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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