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이후의 ‘미투들’
2018년 미투운동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견고할 것만 같았던 위계 성폭력은 폭로되었고 혼자만의 상처로 남았던 폭력의 경험은 ‘나도 그렇다(Metoo)’와 ‘함께하겠다(withyou)’는 마음으로 연결되었다. 폭로와 연결의 힘은 실로 대단했고 ‘미투’의 의미는 한국 사회에 깊게 각인되었다. 그렇다면 미투가 한국 사회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는가? 세상은 단번에 바뀌지 않는다. ‘미투’는 상징이 되었을 뿐이다. 세상을 바꾸는 건 애프터 미투, 계속해서 폭로하고 계속해서 연결되고 있는 ‘미투들’이다.
<애프터 미투>는 포스터에 적힌 ‘아직 할 말이 너-무 많다!’는 텍스트처럼 미투 이후의 ‘미투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다. 스쿨 미투와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과 그 이후의 이야기, 중년 여성의 성폭력 경험 말하기, 여성이 경험한 성적 욕망의 회색지대 드러내기가 네 편의 다큐로 만들어졌는데 아직 할 말이 너무 많다는 건 다큐 속 인물들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만든 감독들이 하고 싶은 말인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를 통해 ‘미투’라는 거대한 해일이 한차례 몰아치고 지나간 뒤에도 여전히 수많은 ‘미투들’이 물살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프터 미투>는 단순히 미투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기록하는 영화가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져 가고 있는 미투 이후의 미투들, 미투운동의 다음 미투운동을 보여주는 영화다.
어두운 방에 전구를 한 번 켜고 난 뒤에 전구를 끄면 그동안 어두웠다는 걸 알 수 있다는 영화 속 발언처럼 우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사회적 경험을 함께했다. 경험 이후 계속되는 삶과 그 안의 고민들을 이야기해볼 수 있는, 우리의 애프터 미투를 이어 나가게 만드는 영화다.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조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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