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함으로 가득 찬 사건, 인생, 그리고 영화
감독이 정말로 하고 싶은 것들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있다. 영화 제작의 수많은 제약 속에서도 꿋꿋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내는 영화들이 있다. 그런 영화들을 나는 사랑한다. 이 영화도 그렇다. 이 영화의 자유로움을 나는 추앙한다.
영화는 쌍둥이 언니를 잃은 한 여자와 일 없이 과거에 쫓기는 한 남자를 등장시킨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서로 평행하게 가기도 하고 교차하기도 한다. 언뜻 보면 굉장히 일상적인 이야기인 것도 같지만 보다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순간 영화가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 때문에 서사가 잘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 영화를 즐기는 가장 주요한 줄기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이야기의 흐름이 주는 느낌을 캐치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이 영화가 서사를 쌓아가는 방식이 얼마나 탁월한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이야기의 흔적과 파편적인 장면들이 머릿속에 맴돈다. 내가 방금 본 이 영화는 무엇일까. 그들의 이야기는 결국 진실이었을까 거짓이었을까. 이것이 맞는 것일까 저것이 맞는 것일까. 사실 그것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수많은 빈칸이 있는 영화이다. 하지만 그것을 굳이 채울 필요는 없다. 우리 삶에도 수많은 빈칸이 있지만 그것을 채운다고 해서 우리가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 영화는 그 빈칸에 대한 영화적인 탐구이다.
이 영화는 2021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새로운 선택부문 새로운 시선상을 받은 영화이다. 상의 이름이 그렇듯 이 영화는 한국독립영화계에 새로운 시선을 부여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코로나로 작은 규모의 영화들이 소외된 지난 몇년 동안에 사람들에게 잊혀졌지만 중요하게 여겨져야할 몇몇 영화들이 있다. <서바이벌 택틱스>가 그런 영화중 하나이다. 코로나의 여풍이 점점 잦아들던 작년에 공개된 기념비적인 몇 편의 한국독립영화들의 연이은 개봉에 더해 잠시 소외되었던 이 영화를 이번 기회에 다시 꺼내보려 한다. 이 영화의 경험이 또다른 소중한 기억으로 남길 기대해본다.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김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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