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고 보이는 것들
“모호함”이란 그 단어가 가진 뜻만큼 다루기 쉽지 않은 단어이다. 하지만 우리가 삶을 예술로 옮길 때 모호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삶은 모호함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삶은 잘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인간의 불안은 그 “알 수 없음”에서 나온다. 인간은 미지에서 나오는 불안정한 상태를 견딜 수 없다. 그래서 삶이 흐르는 가운데 보이는 여러 빈칸들을 채워 넣기 시작한다. 그 빈칸들이 채워질 때 인간은 비로소 불안이라는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런데, 정말 그게 맞을까?
박근영 감독의 <서바이벌 택틱스>는 모호하다. 영화의 스토리라인도 잘 잡히지 않고 이 캐릭터가 내가 생각하는 인물이 맞는지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이런 서사적 이해관계들을 교란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감상하는데 불편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장면과 장면의 연결은 굉장히 부드럽고 보기에 편안하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알 수 없는 위안과 따뜻함까지 느껴진다. 영화를 보면서 잘 느낄 수 없는 신비로움이 머리를 맴돈다.
이러한 느낌은 아무래도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세계에 대한 태도 때문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를 강요하지 않는다. 당신이 보는 모든 것을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듯 자연스레 흘러간다. 그 자연스러움은 이상하게도 굉장히 생경한 자연스러움일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편안한 의문스러움. 그 의문스러움에서 우리는 우리 삶에 존재하는 빈칸을 다시 한 번 골똘히 들여다보게 된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나 알베르 세라같은 위대한 감독들이 그랬듯이 이 영화는 굳이 관객들에게 직접 영화 안의 세계를 설득시키려 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들을 영화 안의 세계로 초대한다. 그리고 경험시킨다. 시각으로, 청각으로, 혹은 이야기로, 관객들은 영화를 느끼고 영화 속 세계로 빨려들어간다. 그 경험의 종착지는 또 완전히 새로운 영역, 우리가 보고 듣지 못한 어떤 지점이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서 나온 후 우리는 방금 본 영화에 대해 반문하게 된다. 방금 내가 무엇을 보았나. 그렇게 영화는 우리의 삶에 자리 잡게 된다. 우리들만의 걸작은 그렇게 탄생한다.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김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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