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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작 프리뷰

<세기말의 사랑> 프리뷰 -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사랑

 

지구가 멸망할 거라는 뜬소문으로 세상이 소란한 가운데, 영미는 사랑 때문에 감옥에 갔다. 결국 세상은 망하지 않았고, 출소한 영미에게는 또 다른 여자, 유진이 찾아온다. 영화는 영미와 유진, 그들 각자가 겪어온 세월과 그들이 서로를 마주한 시간 사이에 깃든 마음을 세심하게 그려낸다.

 

영화 속에 나오는 사랑은 그다지 말쑥하지 않다. 외려 빈틈 많고 남루한 모양에 가깝다. 영화 속에서 인물들은 저 자신에게 손해를 주는 선택을 반복하면서 사랑의 시간을 흘려보낸다. 나는 참 바보 같은 선택을 했군, 그때 그 사람은 그래서 그랬구나, 사랑하는 이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돌이켜보며 이런 말들을 나누는 인물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사랑이 무엇인지 어쩐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에 매일같이 놀라고, 시시각각 풍경들이 바뀌는 세파 속에서, 사랑 때문에 바보가 되기를 자처하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기회가 오는 건 행운이라서 끝까지 가보는 것도 괜찮다고 했던 영미의 대사가 떠오른다. 영미의 입을 빌려 사랑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 영화의 태도를 나는 응원한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그저 분노하는 대신, 차라리 성큼 찾아온 사랑 앞에 겸허히 굴복해보는 일이 참 근사하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마음을 동력삼아 힘껏 걷다 보면 어느덧 예상치 못한 곳에 도착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김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