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다운 것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궁금증이 가득했던 어린 동춘의 눈동자로 시작된다. 이제 열한 살이 된 동춘에게 그런 궁금증은 남아있지 않다. 동춘은 월화수목금토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원에 가야 한다. 작은 키 때문에 일찍 잠에 들어야 하지만, 학원 숙제를 끝마치려면 열한 시에 잠드는 것도 빠듯하다. 그런 동춘에게 로또 번호를 알려주는 신비스러운 친구가 나타났다. 그 친구는 바로 막걸리다.
어린이가 나오는 영화에는 묘한 힘이 있다. 다른 영화보다 몇 배는 쉽게 흐뭇해지고, 몇 배는 쉽게 애틋해지며, 또 몇 배는 쉽게 그 영화를 더 좋은 영화라고 기억하게 되는 힘. 아마 어린이가 우리에게 바로 그런 존재여서이지 않을까. 어린이가 나오는 많은 영화에서 그들은 모험을 떠난다. 또래들과 어울려 논다. 푸른 자연 속에서 여기저기 뛰어다니기도 한다. 그런 게 어린이와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그러나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속 동춘은 전혀 그런 일상을 살고 있지 않다. 동춘이 있는 곳엔 노느라 흙먼지가 잔뜩 묻은 옷 대신 흰 교복 셔츠가 있고, 장난감 대신 현미경이 있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막걸리, 모스부호, 페르시아어와 같이 겉보기에는 전혀 연결지점이 없는 듯 보이는 소재들을 엮어내고 있다. 귀엽고도 참신한 상상력으로 꽉 찬, 어린이와 아주 잘 어울리는 영화. 그 덕에 이 영화는 막걸리가 톡톡 터지며 발효되는 소리에서 시작된 동춘의 상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동시에 아주 비극적인 현실 그 자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막걸리가 모스부호로 말을 건다는 설정은 참 황당하면서도 동춘의 말처럼 초등학생이 모스부호, 페르시아어, 태권도, 미분, 적분, 영어, 코딩, 논술을 모두 배워 막걸리의 이런 신호를 알아듣는다는 사실이 더 어이없게 와닿기도 한다. 어린이를 어린이답게, 어린이를 그저 어린이인 채로 두는 세상이 점점 멀어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그 어떤 것도 완벽하게 갈무리하지 않고 끝을 맺는다. 동춘의 이야기도, 엄마 혜진의 사연도, 삼촌 영진의 도망도. 그리고 동춘처럼 막걸리가 알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을 다른 아이들의 사정까지도. 너무나 비현실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이 영화는 정확히 그 지점에서 관객들에게 질문을 건네고 있다. 동춘이를 대신하여.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박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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