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명확한 형상의 타자에게
영목(임호준)은 깨달음을 위한 일상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 일상은 108배를 올리고, 물을 마시며, 명상을 하고, 산책을 하는 것이다. 이 단순하다면 단순한 행위의 반복은 그다지 일관되지 못하다. 깨달음을 위해 타자와의 교류를 끊고 스스로 밀폐된 삶을 택한 영목에게 자그마한 균열의 요소조차 눈에 밟힌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신의 관념들 속에서 영목은 점점 허우적대기 시작한다. 그 속에서 한 여성이 영목 앞에 나타난다. 그 여성의 형상은 불명확하다.
<벗어날 탈 脫>에서 서보형 감독은 이러한 불명확한 형상의 타자를 한 인간이 어떻게 받아들어야만 하는지 고심하고 있는 듯 하다. 영목의 이야기와 평면적인 세계로서 나란히 놓인 지우(위지원)의 서사에서는 지우가 자신의 작품들 중 하나인 ‘해변의 사나이’를 아직 제대로 형상화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처럼 두 주인공이 자신에게 불현듯 찾아온 불명확한 형상의 ‘누군가’와의 관계가 <벗어날 탈 脫>의 주된 이야기다. 영목과 지우는 자신들에게 찾아온 ‘누군가’에게서 이 영화의 제목처럼 벗어날 수 없다. 혼자만의 장소를 구축해 놓은 영목과 지우 곁이 ‘누군가’는 자리하여 있다.
영목과 지우는 공통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한다. 차이가 있다면 영목은 깨달음으로서 그것을 극복하려고 하고, 지우는 이야기의 끝을 보지 않음으로서(혹은 창작물-결말을 내지 않음으로서) 그것을 유보하려고 하려는 데 있다. 하지만 죽음을 초월하려는 그들의 개별적 몸짓은 매번 가로막히며, 환상의 영역으로 옮겨 간다.
그 모든 과정에서 그들 곁에는 ‘누군가’가 있다. 혹은 그 불명확한 형상의 ‘누군가’를 영목과 지우가 불렀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몸짓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영목과 지원은 자신에게 온 ‘누군가’를 기피하면서도, 동시에 원하는지도 모른다.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류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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