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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불문! 대구독립영화

배용균의 비밀 노트 #4 - 마지막화

장르 불문! 대구독립영화

오오극장은 대구 유일의 독립영화전용관입니다.
대구독립영화의 다양한 방향을 모색하고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대구 관객들과 호흡하기 위하여,
새로운 시선으로 대구독립영화에 접근하는 장, <장르 불문! 대구독립영화>를 연재합니다.
대구독립영화를 주제로 소설, 칼럼,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소개합니다.
그 시작으로, 영화사 연구자 금동현이 대구를 대표하는 전설의 영화감독 배용균을 주제로 쓴 글을 선보입니다. 
매주 수요일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배용균의 비밀 노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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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전 지난 일요일, 덕칠과 만났다. 만나기로 한 카페 문 여니 덕칠이 있었다. 사진과는 아예 다른 모습이었다. 사진도 꾸며낸 거라고 말했다. Dall-E‘failed Korean male artist’라고 적고 이것저것 만져서 생성한 이미지라고. 덕칠과는 오랜 시간 이야기를 했다. 몰래 녹음을 했고 이를 그대로 옮기려고 했지만, 집에 와서 들어보니 옮길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덕칠은 많은 말을 했지만, 의미는 거의 같았다.

 

짜증난다고. 덕칠이 짜증난 이유는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덕칠이 꾸며낸 배용균의 비밀노트를 읽어오며 나도 그와 같은 짜증을 공유해왔기 때문이다.

 

독립영화라는 명칭에 대한 아무런 고민이 없는 영화인들, 자신을 관객의 위치에서 먼 곳에 두고, 스스로를 어떤 전문가라는 입장에서 시작하는 치들에 대한 짜증. 덕칠이 이런 생각을 해 온 것은 2015년부터였다고 한다. 『구르는종이#2』를 통해 배용균에 대해 추억하는 대구 영화인들을 보면서, 현재와의 거리감을 느낀 게 계기였다고 한다. 그는 타블로이드 판인 『구르는종이#2』를 넓게 펼치면서 한받(아마츄어증폭기)의 글을 인용했다. 지금 내 입장에서 돌아보면 배용균 감독님은 한명의 자립영화감독이 아니었나 한다. 허나 자립의 조건들을 마련하는 것보다는 영화 자체의 미학에 집중하셨던 것 같다. 몸소 행하심으로 영화의 미학이 자본의 투입에 하등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천하셨다.” 그는 딱 여기까지만 읽었다.

 

독립, 자립. 많은 말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덕칠의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보낸 사진과 너무 달라서 그랬을까? 검은색 청바지에 몸에 맞는 청바지를 입고 있던 실루엣과 짜증으로 가득한 얼굴만 떠오른다. 어떻게 묘사해도 실제로 봤던 덕칠과는 거리가 멀 테다. 덕칠과 만났던 게 실은 꿈이 아니었나? 글쎄, 이제는 잘 모르겠다. 이럴 거면 사진이라도 한 장 찍고 올 걸. 우거지상의 투덜이, 그렇지만 정이 많은 사람과 대화를 했던 기억만 있다. 나는 항상 이런 후회를 하면서도 사진을 잘 안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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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사진첩을 뒤지다가 덕칠을 발견했다. 86일 오오극장에서 열린 월간대구아마추어 필름(MODAF, IG:@mo.daf23)’ 상영회를 내가 찍어둔 사진이었는데, ‘월간아마추어라는 이름에 이끌려서 갔던 기억이 난다. 영화제 같은 이벤트가 아니라 월간이라는 지속성으로 본인들의 영화를 홍보하는 방식과, 아마추어로 스스로를 표방하는 게 흥미로웠다. 상영된 개별 영화의 질과 별개로, 이렇게 지속성과 수평적 관계를 견지하는 모델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영화제가 아니라 상영회, 학교가 아니라 워크숍. 창작자가 아니라 극장. 전문가가 아니라 관객.

 

정작 영화관에는 나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아는 사람 같았지만그럼에도 이런 말과 일들이 퍼져나갈 수 있다면 좋은 일인 거고MODAF의 표어(?)점점 퍼져가 멀리멀리.그럼에도 정말 외톨이는 나밖에 없군,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웃겨서 객석의 사진을 몰래 찍어뒀던 것 같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앉았던 자리 뒤에 덕칠이 앉아있었다. 나 말고도 외톨이가 한명 더 있었네? , 웃었다. ! 덕칠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글 금동현

 

지금까지 '배용균의 비밀 노트'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