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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불문! 대구독립영화

배용균의 비밀 노트 #3

장르 불문! 대구독립영화

오오극장은 대구 유일의 독립영화전용관입니다.
대구독립영화의 다양한 방향을 모색하고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대구 관객들과 호흡하기 위하여,
새로운 시선으로 대구독립영화에 접근하는 장, <장르 불문! 대구독립영화>를 연재합니다.
대구독립영화를 주제로 소설, 칼럼,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소개합니다.
그 시작으로, 영화사 연구자 금동현이 대구를 대표하는 전설의 영화감독 배용균을 주제로 쓴 글을 선보입니다. 
매주 수요일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배용균의 비밀 노트 #3

 

 

                202374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년 개봉했다.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1995년 개봉했다. 배용균이 서강대로 학적을 옮긴 게 20002, 노트의 첫 문장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런 걸 하나 만들기 위해 내 삼십대를 몽땅 바쳐왔구나 하는 회한과 절망감이니. 이 노트는 1990-1999, 1990년대의 10년간의 기록일 테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1980년대가 단조롭게 보인다면 1990년대는 무척 어렵고 복잡하게 보인다. 87년의 민주화 조금 더 늦추면 92년의 전민투쟁 이후 민주와 반민주라는 선악 구도 흐려지고. 민주화(?) 세력(?)은 얼핏! 보면 시장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꾀하는 대안적·시민사회의 제도 영역을 만들었다.(이를테면 대구독립영화협회는 20003월 창립선언문 발표했다.)

 

그러므로 대안적 영역이 자기 폐쇄의 논리를 펼치거나 공공성이 아니라 시장에서의 생존그런데 무엇의 생존일까? 실은 누군가의 생존 아닐까?을 우선하는 지금, 1990년대는 난해할 뿐 아니라 무척 흥미롭기도 하다. 많은 말들이 하나의 구호로 합쳐지기 전의 혹은 구호조차 헐거웠던 시기. 이 잠정적인 시기에는 많은 희망이 방치되어 있을 것 같다. 1980년대식으로 말하자면, 혁명적 위기의 시기에 현 세대는 과거의 망령들로부터 이름과 구호의 의상을 빌려올 수 있다.(마르크스). 지금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내 지난날들은 눈 뜨면 잊는 꿈(뉴진스)

 

다른 노트가 있을지 모르지만 배용균이 이런 제도적인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신경을 쓰진 않은 것 같다. 그 노트에는 일일이 옮기기 싫은 회한의 감정과 날리는 땅’, ‘불투명한 하늘처럼 추상적인 어휘가 가득했다. 다만 1990년대의 어느 날, 배용균은 이렇게 쓰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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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가는 예술가의 모습을 유지하기가 매우 힘들다. 시인의 얼굴이 아니라 때로는 사업가처럼 보이고 때로는 정치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게 날 고통스럽게 한다. 용모가 그렇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영화작가를 예술적이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굉장히 많다는 의미이다.

 

투쟁의 연속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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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dUCkChil@⏻⏻⏻.com

To: likeacomet@naver.com

Sent: 2023-07-19 () 23:53

Subject: 금동현에게

 

금동현군. 인터넷에서 매거진 삼삼오오에 쓴 글을 읽었습니다. 배용균의 비밀노트라는 글이요. 글을 읽고 급하게 메일을 보내봅니다. 이렇게 빨리 용균이의 공책을 써먹을지 몰랐습니다. 조만간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여하간 긴히 말할 게 있습니다. 한 번 봤으면 합니다. 시간과 장소는 동현군이 정하세요.

 

용케도 제 이름을 알아내셨군요. 덕칠 드림.

 

덕칠에게 메일이 왔다. 지금껏 약속 시간과 장소를 일방적으로 통보해온 사람이, 나에게 정하라고 하는 게 귀여웠다. 인터넷에 글을 올린 게 부담스러웠나? 아닐 것이다. 지난 몇 주 동안 배용균의 비밀 노트를 읽으면서 덕칠에게 의심스러운 점이 꽤 많이 생겼다. 덕칠이 상대적으로 저자세를 취하는 것도, 급하게 만나고자 하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덕칠도 찔렸겠지!

 

그래서 이런 메일을 보냈다.

 

From: likeacomet@naver.com

To: dUCkChil@⏻⏻⏻.com

Sent: 2023-07-20 () 09:03

Subject: Re:금동현에게

 

안녕하세요 덕칠님.

장염은 어떠신지요?

매거진 삼사오오에 선생님과의 대화나 일화를 무단으로 써먹어서 죄송해요.

다만 배용균 감독의 비밀 노트라면 그건 사적으로 묵혀둘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

그렇다면 한국영상박물관근처에 있는 빽다방에서 보면 좋겠어요.

제가 최근 일이 많아서요. 81315시가 좋을 것 같은데 어떨까요?

 

그리고 일전에 덕칠님의 얼굴을 모르니 너무 답답했어요.

가능하시면 얼굴 사진을 한 장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덕칠이 조금 괘씸해서 장난을 쳐봤다. 장난이라 봤자 윙크 이모지 😉. 여하간 이번에 만나면 지난 몇 주간 들었던 의문에 대해 물어봐야겠다. 이를테면, 배용균은 2001년에 서강대로 학적을 옮겼다는데 왜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당시 가상 포메이션 황선홍. 왼발을 좀 써야같은 메모가 효성여대 재직 중에 남겼다는 노트에 있을까? 어떻게 된 게 영화에 대한 메모가 KINO영화잡지에 공개된 글들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을까?

 

덕칠은 왜 배용균의 비밀 노트라며 배용균의 글을 짜깁기한 가짜 문서를 나에게 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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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dUCkChil@⏻⏻⏻.com

To: likeacomet@naver.com

Sent: 2023-07-19 () 23:53

Subject: Re: Re: 금동현에게

 

알겠습니다.

제 사진을 첨부합니다.

 

 

-글 금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