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상영작 프리뷰

<돌들이 말할 때까지> 프리뷰 - 제주에 남겨진 상처에 대한 어떤 기록

 

제주에 남겨진 상처에 대한 어떤 기록

 

비극적인 사건을 그리는 영화적 방법은 다양하다. <볼링 포 콜럼바인>처럼 어떤 원인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엘리펀트>처럼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시점으로 극영화의 형태를 통해 정교하게 그것을 재현하는 영화도 있다. 혹은 홀로코스트 학살에 대한 취재와 인터뷰를 몇 년간 모아 9시간의 장대한 분량으로 만든 <쇼아>나 중국 문화대혁명 이전 자볜거우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생존자들의 인터뷰만으로 그 당시를 재현한 <사령혼: 죽은 넋>과 같은 방법론도 존재한다.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이 <쇼아><사령혼: 죽은 넋>의 방법론을 사용하여 제주 4.3사건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그렇다. 김경만 감독의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제주 4.3사건 당시 전주형무소에 수감되었던 다섯 명의 할머니들이 그 당시를 회상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촬영한 영화이다. 영화는 오직 다섯 분의 생존자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중심으로만 전개된다. 철저하게 사건 내부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관객들이 당시 사건을 그릴 수 있도록 한다. 당시의 참혹함을 강조하거나 감상주의적으로 소모하지 않고 영화는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사건의 진정한 진실을 밝힌다.

 

이 영화에서 인터뷰의 빈 곳들을 채우는 것은 당시 사건에 대한 자료화면이 아니다. 영화는 그것을 현재 제주 곳곳의 모습으로 채우고 있다. 사건이 터지고 7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제주의 모습, 그것은 정적이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슬픔을 전달하기도 하며 몇몇 이미지들은 참혹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돌들이 말할 때까지>라는 제목을 다시 보게 하기도 한다. 이따금씩 나오는 제주의 돌들, 그리고 무거운 침묵. 마치 과거 사건에 대해 이야기조차 꺼내지도 못했던 생존자들의 모습을 대변하듯 돌들은 그렇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우리에게 제주 4.3사건과 관련된 어떤 명징한 답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당시 사건이 휩쓸고 간 흔적에 대한 증언을 제시하고 관객들에게 질문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당신은 어떤 것을 볼 것인가, 그리고 어떤 질문을 듣고 어떤 대답을 떠올릴 것인가.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이 점에서 우리를 숙연하게 하고 사건에 대한 이미지를 재정립해준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밖을 나설 때 비로소 당신은 제주에 남겨진 4.3의 상처를 제대로 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김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