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 아닌 우리의 이야기
선아, 지수, 보미 세 사람은 지수 부모님의 산소로 향하던 중 차 사고가 난다. 내비게이션에 제대로 길도 뜨지 않는 시골 동네에서 계획에 없던 하룻밤을 보내며 세 사람은 예상치 못한 일을 겪게 된다. 이러한 줄거리의 영화이지만, <내가 누워있을 때>라는 작품을 이렇게만 요약하기엔 분명 어폐가 있다. 이 영화의 더 중요한 점은 한 꺼풀 아래에 있다. 세 사람이 하루 사이에 겪은 일 그 어디에도 우연은 없었다는 것.
보미가 환영을 보지 않았더라면, 사고는 없었을 것이다. 보미의 환영은 사산한 아이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죄책감은 왜 보미의 것이기만 했을까. 이들이 젊고 어린 여자가 아니었다면, 카센터 직원들은 바가지를 씌우거나 숙소까지 찾아와 겁박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건 세 사람이 여성이기에 어쩔 수 없던 필연의 하루라고 받아들여졌다.
<내가 누워있을 때>의 전반에는 죽음의 이미지가 깔려있다. 이건 ‘죽음’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나타내기도 하고, 관계의 죽음에 대한 말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상실을 겪어왔고, 반드시 겪을 수밖에 없다. 만연한 여성 혐오 범죄에 공포심을 느낀 적이 있다. 너무 소중했던 사람이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며 이전과 달라지는 걸 지켜봐 왔다. 그러니 <내가 누워있을 때> 속 이야기는 모두 우리가 아는 감정이며 경험이다. 극중에서 인물이 느끼는 공포감을 관객이 함께 실감할 수 있도록 연출된 장면들이 있다. 그 순간에 누군가 인물의 옆으로 다가와 선다는 것만으로 나의 두려움까지 사그라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관계의 종말을 겪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아무 이유도 없이 내 편이 되어주고, 응원해주고, 부모님의 산소를 함께 찾아주기도 하는 거다. 영화를 보면 적어도 최정문 감독이 <내가 누워있을 때>를 통하여 어떤 말을 전하고 싶었는가는 확실하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3년 만의 개봉을 앞둔 <내가 누워있을 때>. 영화 안엔 참 반가운 얼굴들이 많다. 익숙한 얼굴들을 보며 각기 다른 사정으로 잠들지 못하던 세 사람이 정말 내 옆에 살아있는 것 같단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누워있을 때>는 우리의 삶을 지극히도 닮아있다.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박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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