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튀르키예 카파도키아 지역에 출장을 온 대식은 함께 온 팀장에게 등살이 떠밀려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비슷한 시간 같은 투어에 등록한 한 부부, 대식은 우연히 부부를 마주치고 움찔한다. 그렇다. 이혼한 전남편과 함께 재결합 여행을 온 정화는 과거 대식에게 연애에 대한 트라우마를 남긴 사람이었다!
영화에서 대식과 정화는 모두 타의에 의해 여행에 끌려온 사람들이다. 대식은 정해진 업무를 잘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가려 했으나 상사의 만류로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정화는 여행을 가서도 술을 절대 먹지 않겠다는 신신당부를 남편이 받아들여 마지못해 튀르키예에 온 것으로 보인다. 우리 모두 그럴 때가 있지 않나? 정작 하고 싶은 건 못하고 일이니, 여행이니, 연애니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하루하루를 보낼 때가 있다. 주체적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맞는데 때때로 그러지 못할 때가 많다. 대식과 정화도 그런 삶의 흐름 속에 있었다. 일에, 사랑에, 치이고 치이다가 결국 튀르키예에서 그들은 다시 만났다.
여행에 와서도 그들은 그들의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 술을 먹지 않겠다고 무릎꿇고 빌며 계약서까지 작성한 정화의 남편은 결국 술에 손을 대고 하루 종일 사사건건 예민하게 굴다가 여행객들끼리의 술자리에서 만취한 채로 난동을 부린다. 대식도 상사와 함께하는 원치 않는 투어에서 늘 마음이 불편하고, 더군다나 옛 연인이었던 정화를 만나 과거 생각에 잠도 쉽사리 들지 못하며 이리저리 방황한다. 치이고 깨지는 시간의 연속이 지나가고 대식과 정화는 결국 대면하여 서로의 마음을 바라보게 된다.
영화의 제목인 ‘귤레귤레’는 ‘웃으며 안녕’이라는 튀르키예의 인사말이다. 우리는 모두 이별해야 할 때가 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물건이든 혹은 보이지 않는 시간과 사건들로부터도 작별을 고해야 한다. 좋지 않았던 인연, 혹은 힘들었던 과거와 우리는 어떻게 좋은 이별을 할 수 있을까? <귤레귤레>는 튀르키예의 멋진 풍광과 함께 웃으며 안녕할 수 있는 어떤 순간을 제시한다. 아무리 힘든 일을 겪었어도 삶의 순간들이 지나 어떤 시간에, 어떤 공간에 도달하면 꼬여있던 우리의 마음도 서서히 풀려 아름다운 안녕을 고할 수 있다고 <귤레귤레>는 말한다. 그렇게, 거기서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고, 영화는 우리를 위로한다.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김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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