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이미지는 영화로서 어떻게 기능하는가
<오색의 린>은 이원우 감독 본인이 새로 산 카메라를 테스트하던 도중 도롯가에서 마차를 끄는 말을 만나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잠시 쉬고 있는 듯한 ‘깜상’이라는 이름의 말은 도시라는 공간에서 배설을 하면 안 되기에 먹거나 마시지 못한 상태다. 이원우 감독은 예상치 못한 만남에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도 못한 채로 깜상에게 카메라를 대는 것처럼 보인다. 목적성이 부재한 흐트러진 이미지는 그렇게 애정의 이미지가 된다.
깜상과의 만남처럼 이러한-영화적 목적이 없는 형태로서의-순수함을 간직한 이미지들을 <오색의 린>에서 당신은 종종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갑자기 옆 사람과의 순간이 소중해지거나, 해가 지는 노을이 아름다워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이미지와 본질적으로 같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사적인 이미지에서 출발해 <오색의 린>은 거대 담론으로 나아간다. 깜상과의 만남은 점점 다른 이미지들과 비유, 환유가 되며 동물권, 페미니즘, 장애 인권으로 나아간다. 그 중심의 축에는 말의 운동성이 있다. 교통수단으로서 역사적으로 말이 어느 때에 달렸는지, 그리고 자동차-기차-비행기가 그것을 대체하자 현대사회에서 말의 운동은 어떻게 착취당하는지 보여주며 <오색의 린>은 인간의 역사에 대해서도 수정한다.
이러한 역사-기록으로서의 다양한 사유들이 하나의 영화로서 기능하는 것은 <오색의 린>의 흐트러진 이미지들 덕이다. 우리가 타자에게 언어를 통해서 소통하려는 것을 이미지로서 설득시키려면 보다 정확한 이미지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정돈된 이미지일수록 그 이미지의 목적성이 분명하기에 그 안의 물질들은 보다 신중히 배열되어야 한다. <오색의 린>의 사적인 애정이 담긴 흐트러진 이미지는 이러한 이미지의 논리를 대체한다. 다른 한국 에세이 필름에 비해 <오색의 린>의 보다 명확한 화법에 종종 찾아오는 사적인 경험담은 논리를 넘어선 비약이 필요한 순간 애정으로 제역할을 해낸다. 종종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나는 그 사람의 논리가 아닌 표정과 어조를 보며 그 사람의 말을 이해할 때가 있다. <오색의 린>을 보며 나는 종종 이원우 감독과 값진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착각이 들곤 했다.
-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류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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