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불문! 대구독립영화
오오극장은 ‘독립영화의 창작과 비평의 토대에 관한 몇 가지 질문과 제안들’[개관 8주년 행사], ‘대구 시네마테크 운동 밑그림 그리기[매거진 삼사오오 연재]’ 등 오늘날의 독립영화를 돌아보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돌아보는 작업과 겸하여 혹은 그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한국 독립영화 감독들에게 조금 더 능동적인 태도를 요청하고 실천적인 팁이 될 수 있을 두 글을 함께 읽고자 합니다.
첫 번째 글은 〈경기도의 어느 남향 집〉으로 ‘스페인 팜플로나에서 열리는 푼토 데 비스타(Punto de Vista)—나바라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다녀오신 박진용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 나의 영화제 기행」이었습니다.
아래의 두 번째 글은 〈부모 바보〉(이종수, 2024)를 자체 개봉한 보리수나무영화사 정보라 제작자의 「RE: 극장 상영 문의 드립니다.」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개봉 지원을 받지 못하면 현실적으로 극장 상영이 어려운 독립영화의 유통 구조에서, 자체 개봉이라는 “우리 방식”을 통해 〈부모 바보〉는 개봉할 수 있었습니다. 지원 등의 구조에 기대지 않은 방식을 택했던(혹은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보리수나무영화사의 “우리 방식”이 제시한 대안적 모델은 어떻게 존립 가능할까요? 글의 정보와 함께 정보라 제작자의 정서—부정성에서 긍정성으로 전환하는—를 꼼꼼히 느껴주시길 바랍니다.
매거진 삼삼오오는 앞으로도 오늘날의 독립영화 문화에 대처하는 실천적인 글을 소개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RE : 극장 상영 문의 드립니다
2025년 1월 8일, 저는 이종수 감독과 함께 보리수나무영화사를 통해 <부모 바보>를 자체 개봉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자체 개봉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상황 속에서 자체 개봉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고 결국 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자체 개봉’의 ‘비법’을 공유하기 위해 쓴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고, 그때그때 부딪히며 배운 경험들을 솔직히 적어보려 합니다.
이 기록이 자체 개봉을 고민하는 누군가에겐 작은 참고가 되고,
독립영화에 관심 있는 이들에겐 오늘의 현실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며,
함께 영화를 만들어가는 독립영화인들에겐 잠시 숨을 고르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바랍니다.
1. RE : 극장 상영 문의 드립니다
자체 개봉을 결심한 뒤, 우리는 곧 하나의 질문 앞에 섰다.
“개봉을 하기로 했는데, 개봉은 어떻게 하는 걸까?”
사설 배급 수업도 들어보고, 개봉 관련 교육은 빠짐없이 찾아다녔다.
다시 학생이 된 마음으로, ‘배급’이라는 단어가 한 줄이라도 들어 있는 책이라면 찾아 읽었다. 덕분에 배급의 개념과 구조는 익숙해졌지만, 정작 중요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느냐’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결국 우리가 내린 결론은 단순하고 당연했다.
“일단, 우리 영화를 상영해 줄 극장부터 찾아보자.”
우리가 정한 개봉일을 기준으로, 그 일정에 상영이 가능한 극장이 있는지 하나하나 확인해 보기로 했다. 각 극장의 홈페이지를 뒤져 대표 이메일 주소를 모으고, 거기에 직접 상영 문의 메일을 보냈다. 프로그래머의 연락처는 대부분 공개되어 있지 않아서 대표 메일로 보내고, 답이 없으면 다른 경로도 찾아봤다. 이 방식이 맞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보기로 한 것이다. 메일을 보내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내용을 쓰는 데만도 며칠이 걸렸고, ‘전송’ 버튼을 누르기까지도 망설임이 컸다.
보낸 날, 아무도 답장하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메일함을 열어보고, 심지어 스팸함까지 확인하곤 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하루에도 몇 번씩 메일함을 들락날락했다.
며칠 뒤, 받은 메일함에 도착한 한 줄의 제목.
RE : <부모 바보> 극장 상영 문의 드립니다
그 회신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용은 간단했다. 상영이 가능하다는 답장.
그 답장이, 우리에겐 곧 개봉의 시작이었다.
사진 1 . 실제 보낸 메일함 첨부
2. 왜 우리는 자체 개봉을 선택했을까?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부문에 초청된 뒤, 서울독립영화제 본선 경쟁, 무주산골영화제,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등 다양한 영화제와 기획전에 초대된 <부모 바보>는 결코 평범한 여정을 걸은 영화는 아니었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그 어느 곳에서도 선뜻 ‘이 영화를 우리가 개봉해 보겠다’는 제안은 없었다. 배급사를 만나지 못했던 건 아니다. 여러 곳과 미팅을 했고, 각자의 방식으로 <부모 바보>를 진지하게 검토해 주셨다.
문제는 시장의 상황이었다. 독립영화의 유통과 배급이 유난히 조심스러워진 요즘,
결국은 배급사의 일정과 전략에 우리 영화가 맞춰져야 한다는 조건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그 과정을 거치며, 이상한 감정도 따라왔다.
마치 우리가 만든 영화로 인해 배급사에 부담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죄책감
창작자인 우리가, 오히려 내 영화로 인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듯한 기분.
그 감정은 정말이지 씁쓸했다.
그리고 개봉 지원을 받아야만 개봉이 가능한 구조 역시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부모 바보>는 유명 배우가 출연한 영화도 아니고, 정부의 제작지원을 받아 여유롭게 촬영한 작품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개봉 지원을 받을 자신도, 확신도 없었다.
개봉 지원을 받지 못하면 개봉이 요연한 이 단단하고도 단순한 현실 속에서,
결국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냥, 우리 식대로 가자.”
그렇게 <부모 바보>는 단 한 번의 개봉지원 신청 없이, 자체 개봉을 하기로 결정했다.
처음부터 제작 지원 없이 만든 영화였으니, 개봉도 <부모 바보> 답게 끝까지 우리 손으로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사실, 이런 결정을 하면서 가장 신경 쓰였던 건 감독님이었다.
여느 데뷔작처럼 용산 CGV에서 시사회라도 열어드리고 싶었지만
오히려 감독님이 먼저 그런 방식을 내려놓으셨다.
이종수 감독님은 늘 새로운 방식에 주저함이 없었다.
촬영할 때도 형편에 맞게, 본인의 리듬과 스타일대로 영화의 톤을 정했고,
남들이 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르기보단 늘 ‘우리 방식’을 고집하셨다.
이번 개봉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규모는 작지만 단단한 길을,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
사진 2. <부모 바보> 개봉 겸 첫 무대인사 현장 사진
3. 자체 개봉의 과정
상영 문의 메일을 보낸 곳 중 절반 정도의 답장을 받았다.
대표 메일로 보냈기에, 어떤 경우는 바로 담당자에게 닿아 답장을 받았고, 어떤 경우는 여러 부서를 거쳐 몇 달 만에 확인된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내가 보낸 메일 주소가 잘못돼 아예 못 받은 곳도 있었지만, 다른 극장에서 개봉 사실을 알고 먼저 연락해 준 경우도 있었다.
답장 내용도 정말 다양했다.
어떤 극장은 흔쾌히 개봉을 허락해 줬고, 어떤 곳은 이미 기획전 등 미리 정해진 라인업 때문에 어렵다는 이야기를 에둘러 전했다. 또 어떤 곳은 단호하게 거절하기도 했다. 그런 회신조차 우리에겐 큰 의미였다.
기대 이상의 호의와 상영 제안, 그리고 직접 전화를 걸어 격려해 준 극장도 있었다.
이처럼 개별 극장과 직접 부딪히면서 소통하는 경험은, 배급사와의 관계에서는 얻기 어려운 소중한 기회였다.
최종적으로 우리는 19개의 독립영화관과 멀티플렉스를 포함해 총 27개의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영관을 확보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산 넘어 산이다.
개봉 절차와 준비해야 할 일들이 낯설어‘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 하는 막막함이 계속되었다.
그때마다 서로 의논하며, 우선 우리가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하나씩 직접 부딪히고 시도했다.
영화관에 가면 굿즈를 나눠주고, SNS에는 영화 홍보 게시물이 올라온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기본적인 홍보 방법부터 시작했다. 모든 과정이 우리 손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예상치 못한 재미도 많았다.
<부모 바보>만의 독특하고 논란(?)이 된 포스터와 예고편, 그리고 새로운 방식의 GV, 감독님이 직접 시를 써서 만든 ‘시 카드’ 굿즈 제작 등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모두 시도해 봤다.
반면, 필요 없다고 판단한 홍보물들은 과감히 생략했다.
‘우리 영화를 우리가 홍보한다’는 마음으로, 자체 개봉인 만큼 홍보 대행사를 두는 것도 사치라고 생각해 모든 홍보를 직접 맡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SNS 디자인 실력이 점점 좋아졌고, 감독님은 거의 디자인 기계가 되어있었다. 홍보 작업이 끝난 뒤엔 감독님과 함께 굿즈 비닐 포장까지 하며 ‘가내수공업’ 같은 작업을 이어갔다.
그렇게 보리수나무영화사가 자연스럽게 배급사로 거듭나는 순간들이였다.
사진3. 1000명 누적 관객수 기념 축전
4. 자체 개봉으로 아쉬운 점
자체 개봉은 자유로운 만큼 무거운 책임도 따른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곧 우리 영화를 대표하는 행동이 되었기에, 그 부담감은 상당했다.
자체 개봉에서 느낀 한계와 어려움은 분명했다.
우리가 배급 프로세스를 전혀 알지 못했던 점은 극장 측에서도 답답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배급사가 준비하는 절차와 용어들이 우리에게는 생소했고, 여러 부분에서 놓치거나 부족함이 있었지만, 극장 측은 많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배려가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우리 작품을 상영해 준 모든 극장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개봉 전, 자체 개봉에 대해 자문을 구했던 한 극장 관계자는 ‘본인 극장에서는 배급사가 없는 작품을 상영한 적이 없으며, 창작자는 창작에 집중하고 배급사는 배급을 맡아야 하는데, 창작자가 배급까지 책임져야 하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막상 개봉을 경험해 보니 그 말이 크게 와닿았다.
우선 배급사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자체 개봉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과정이며, 배급사는 흥행 가능성과 수익성이 높은 작품을 우선순위에 두는 현실임을 체감했다.
무엇보다 우리는 배급 프로세스를 전혀 모르고, 극장과 같은 인프라도 없이 일을 시작하다 보니, 들인 시간에 비해 개봉의 성과는 미미했다. 또한 극장 역시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배급사의 작품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만약 그 시간을 창작에 쏟았다면 더 좋은 결과를 냈을 거라는 생각에 점점 지쳐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의 해결책은 새로운 영화 촬영과 개봉을 병행하는 방식이었다. 창작 현장에서 얻은 에너지가 지친 개봉 일정에 힘을 불어넣었고, 두 가지 작업이 서로 긍정적인 시너지를 내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오히려 창작 활동이 개봉의 부담을 덜어주고, 개봉 경험이 다시 창작의 자양분이 되는 우리 나름의 보리수나무영화사 ‘제작 + 배급’ 선순환이 만들어진 셈이었다.
사진4. 부모 바보 스틸컷
5. 자체 개봉... 사실은 연대 개봉
솔직히 말해 ‘자체 개봉’이라는 표현이 다소 민망하게 느껴진다. <부모 바보>의 개봉 과정은 이종수 감독과 정보라 프로듀서 두 사람만의 힘으로 해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체 개봉이라는 결정은 우리 몫이었지만, 그 여정에는 수많은 동료 감독님들, 영화를 사랑하고 홍보하며 비평해 주신 평론가님과 시네필 관객들, 부족한 배급 업무에도 늘 친절히 협조해 주신 독립영화관 관계자들, 그리고 개봉 과정에서 귀중한 자문을 아끼지 않은 한 배급사 대표님까지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함께했다.
이분들이 없었다면 <부모 바보>는 결코 개봉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체 개봉’보다는 ‘연대 개봉’ 혹은 ‘공동 개봉’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흐름은 <부모 바보>가 종영된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지금도 많은 동료 감독님들로부터 연락을 받고 있는데 그들 또한 우리와 비슷한 상황 속에서 자체개봉을 결정했거나, 염두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동료 영화인들 사이에서도 개봉 방식에 대한 불안, 두려움, 그리고 대안을 찾기 위한 논의가 자연스럽게 사작됐다. 지금의 독립영화 환경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서로 공감했고,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고자 한다
그런 움직임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을까. 보리수나무영화사에서 이원영 감독님의 <절망의 요소>, 구파수 륜호이 감독님의 <소리굴다리> 가 개봉 예정 되어있다. 우리는 하나의 배급사라기보다, 앞서 말한 ‘연대, 공동 개봉’의 느낌으로 함께 개봉의 여정을 걸어보려 한다.
최근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한국 독립영화가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있다’는 가설을 주제로 포럼이 열리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우리가 자체 개봉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과도 맞닿아 있다. 그리고 지금 동료 감독님들이 보내오는 반응은, 이러한 새로운 흐름이 단지 예외적인 선택이 아닌,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 명의 독립영화인으로서, 자체 개봉을 선택하는 동료 감독님들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함께하면서도, 이 같은 경험들이 모여 독립영화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사진5. 부모 바보 GV 현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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