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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불문! 대구독립영화

대구 시네마테크 운동 밑그림 그리기: 이영은과의 대화 - 마지막

대구 시네마테크 운동 밑그림 그리기 : 이영은과의 대화

 

 

대구영화발굴단

(김주리, 금동현, 류승원, 이라진)

 

 

 

5. ‘아메닉이후의 이영은, '핀다'를 말하다

 

: 자료를 찾다 보니 어떤 기사에 선생님께서 '아메닉' 해체 이후에 여성단체나 밴드 활동을 하셨다고 적혀 있더라고요. 혹시 이런 식으로 후속 활동으로 이어졌던 것들이 또 있었는지 궁금해요.

 

: 거기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많아요. 일단 '아메닉' 당시에 98년에 1회 대구여성영화제, 99년에 2회 대구여성영화제를 정말 크게 성대하게 했거든요, 사실. 정말 감독들한테 다 전화로 얘기해가지고 사실 상영료를 조금밖에, 5~10만 원 정도밖에 못 주기는 했지만은 정식으로 부탁하고 상영료를 지급하고 필름 다 받아가지고 확인하고 돌려주고 그렇게 아주 형식을 제대로 갖춰가지고 두 번을 했어요. 그런데 그게 이어지지 못한 것에서 큰 아쉬움이 있기는 한데요.

 

원래 김희경 대표가 대구여성회회원이었고, 그분은 대학교에서 단대 여학생회장을 하면서, 그러니까 여성주의에 눈뜨면서 그것이 또 영화적으로, 문화적으로 가치 있고 열린 활동을 하는 새로운 것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그것들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였어요. 저는 '아메닉'이 끝날 때 많이 아파서 아픈 것 때문에 쉬고 다시 회복하고 몇 년 지나고 난 다음에, 이제 그때 언니가 우리 또 재밌는 거 한번 해보자, 그때 7예술들어와서 우리 같이 해보자 얘기했던 것처럼 재밌는 거 또 해보자, 우리끼리 모여가지고 다른 데서 얘기 안 하는 재밌는 주제로 파티도 하고 그다음에 공부도 하고 그리고 여성 밴드도 한번 만들어보자 그래가지고 모였었거든요. 그래가지고 그때 그냥 우리한테 모임하거나 그다음에 좀 이렇게 뭔가 기댈 때가 필요하니까 여성회 가입을 하자고, 희경 언니가 되게 재밌는 사람이라서 항상 약간 농담처럼 이런 얘기를 했거든요.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그래 하고 여성회 가입을 모두 함께하면서 그 소모임 등록을 거기에 했어요. 소모임할 때 주로 카페도 많이 가기는 했는데, 여성회 사람들이 되게 선하고 좋은 분들이라서 소모임을 하려고 하면 자리를 늘 마련해 주고 했었거든요. 비어 있는 테이블에 와서 하고 그러면서 문화 모임 신난걸이라는 이름으로 한 1~2년 활동을 했어요. 그 사이에 신난걸파티를 몇 번 했었죠. 할 때마다 여성회 회원들도 오지만 또 우리가 지금까지 알음알음 알아왔던 사람들도 많이 왔어요. 주로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시거나 운동권 위주기는 했는데 그냥 재밌는 걸 좀 좋아하는 사람, 문화적인 관심도 있는 사람들이 되게 좋아해줘 가지고, 늘 엄청 재미있게 행사를 했던 기억이 나요. 그러다가 이제, 김희경 언니, 조경희 언니, 김은영 언니 이분들이 주축이 됐었는데, 그분들이 정말 놀랍게도 모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없는 거예요. 대구를 떠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해체를 했거든요. 그리고 저는 그 이후에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고 있었는데요. 저는 핀다얘기를 좀 하고 싶어요.

 

* 대구여성영상공동체 핀다[Find_]‘Feminist Identity N Delight’, ‘(A)’를 조합한 약어다. 여성영화를 통해 여성인 ()’를 찾고(find), 사소하게 여겨졌던 여성들의 이야기 하나 하나(A Story)를 새로운 각도(Angle)로 해석하고 소통한다는 의미다.

 

대구여성영상상영공동체 핀다활동을 제가 2007~2008년 즈음에 하게 됐거든요. 여기가 되게 재밌는 게, 일단은 <흡년>이라고 좀 그때 상당히 사람들한테 인상적으로 남았던, 좋은 작품을 만들었던 다큐멘터리 하는 김상현이라는 친구가 있었거든요. 그 친구는 사람들을 모아가지고 시작해서 새로운 걸 만드는 걸 또 잘하는 재능이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가지고 저를 비롯해서 원래 영상이라든가 아니면 여성주의라든가 그런 여러 가지 활동을 하던 사람들 몇몇한테 제안을 해가지고 일단 우리 모여서 같이 뭐 할지 같이 얘기해보자고 했어요.

 

그러다가 한 세 번째 모임쯤에 '파인드(find)' + '()', 이래가지고 '나를 찾는다'라는 뜻으로 지었어요. 또 카메라에 뷰파인더 연상되기도 하고. 그걸 읽을 때는 그냥 핀다라고 하자 해가지고 이렇게 정식으로 '대구여성영상상영공동체 핀다'를 만들고 첫 번째 상영회를 기획했어요. ‘레즈비언 액티비즘이 주제였어요. 그러니까 우리의 목표는 여성주의 그리고 다양성 영화, 그다음에 정체성과 관련된 것들, 절대로 상업 영화는 못 담는 것들. 그런 것들이었어요. 그때 일반적인 독립 영화들도 좀 정치적이거나 아니면 사회적인, 그런 식의 약간 보수적인 어떤 세대들의 이슈를 다룬 것들이 많았었거든요. 상영이 잘 안 되는 것, 최소한 여성 영화제에서 사람들이 좋아했고 한 번 더 보고 싶어 하는 영화들만이라도 상영하는 그런 자리가 만들어지는 거였어요.

 

그때 하여튼 그때 그냥 모든 게 정말 공동체적으로 이뤄졌어요. 대표를 정하고 역할을 만들고 그다음에 사무실을 구하고 이런 일 하나도 안 하고 그냥, 그때그때 우리가 만나기 좋은 장소에, 만들기 편한 시간에 만나가지고 얘기를 하다 보면, 너는 이 역할을 하고 또 너는 저 역할을 하고 또 가장 구심점이 되는 내용을 가진 사람들을 끌고 가면서 다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소소한 걸 하던 크고 많은 걸 하던 서로 전혀 눈치 보거나 그런 것 없이 그냥 다 재미있게 상영회를 했거든요. 그런 상영회를 또 굵직하게 한 네 번을 하고, 그 뒤에도 또 다양성 영화라는 측면에서 가장 바깥에 있는 영화들의 상영회를 몇 번을 더하는 방식으로 상영을 했어요. 그때 대표였던 김상현 감독한테서 받은 자료들을 좀 보여 드릴게요.

 

2007 침묵의 일상, ()! 기지개를 핀다
11 레즈비언 비디오 액티비즘
12 나비효과 영상을 만나다
1 대구 여성미디어 활동가 작품 상영회
2 이주여성이 직접 들려주는 영상 이야기
   
2008 들락날락 이야기 핀다
7 장애여성영화 기획 상영 불만 있어요!?”
8 나비가 본 세상
9 페미니스트 다큐멘터리 특별전 말하고 싶은 언니, 연락해요
10 대구지역 이주여성이 제작한 영상물 기획 상영회 경계를 넘어, 길이 되다
11 3xFTM
12 레즈비언 비디오 액티비즘
   
2009 ...그래도 핀다
3 여성의 날 맞이 핀다 아카이브 영상 상영 및 언니들 파티 “F4파티
6 레즈비언 비디오 액티비즘
8 대구지역 기획상영회 여성을 말하는 다섯 개의 감수성! 오이오감
12 여성노동영화 상영회 우리들은 정의파다

 

 

핀다의 역대 상영회 자료를 함께 살펴본 후 인터뷰를 계속해서 진행했다.

 

: ‘핀다에서는 몇 년 정도 활동하신 거예요?

 

: 그게 2년 아니면 3년인가 했죠, 그래서. 그렇게 하다가 이름이랑 내용이 승계돼가지고 지금도 이제 아마 대구독립영화협회소재로 핀다가 존속하고 있을 거예요. 김상현이라는 친구가 독립 영화 제작 활동을 하면서 자기 커리어를 시작한 사람이라서 원래 그쪽 일을 같이 하면서 우리 핀다를 만들고 진행을 한 거였거든요. 그러면서 이제 대구여성영상상영공동체라는 정체성은 이제 놓고, 그러니까 독립영화공동체라는 정도로 이어간 걸로 저는 알고는 있어요.

 

저는 핀다를 따로 소개하면서 꼭 알려드리고 싶은 게우선 김상현이라는 친구가 저를 섭외한 이유가 뭐였냐면, 그 친구가 우리가 아메닉때 했던 그 독립 영화 상영회를 보러 왔던 거예요. 그리고 당연히 거기서 저는 작품과 행사를 소개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고 그런 저를 기억하고 있었던 거죠. 그 뒤로도 비슷한 활동을 하다보니까 아는 사람들이 겹치잖아요. 우연히 건너건너 마주치다가 나중에 아는 사이가 됐을 때 당연히 이 친구는 저를 영상 활동하는 사람으로 기억했기 때문에 제안을 했던 거였거든요.

 

근데 저는 그때 '아메닉'을 문을 닫고 난 다음에 희경 언니가 제기했던, 우리가 지금처럼 말고 (이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그렇게 소소하게라도 계속 아메닉을 이어나갔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더 많지 않을까 했을 때, 진짜 그 내용이 꼭 우리 '핀다'의 활동 같았거든요. 그래서 정말 저는 이거는 사람들한테 되게 알리고 싶어요. 사람들이 모여서 영화를 상영하는 걸로 소통을 한다면 이런 그림이면 참 좋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도 자기의 정체성이 담긴 영화를 만든 감독에게 그 사람의 얘기를 듣고 다시 자기 얘기를 하기 위해서 오는 그런 자리들이었거든요. 그래서 만약에 이렇게 다른 데서는 잘 볼 수 없는 영화를 상영한다고 하면은 이런 다양성 영화들을 위한 자리를 만드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우선적인 일이 아닐까라는 그런 생각이 좀 들 정도로 늘 상영회가 되게 좋은 자리였어요. 그래서 그냥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 아까 핀다의 역대 상영회 내역을 보니까 대구 여성 창작자들의 영화를 모아서 상영한 기록이 있더라고요. '아메닉'에서도 이전에 대구에서 만들어진 영상, 독립영화들을 모아서 상영했던 것 같았는데요. 저희도 그때 있었던 자료들을 다시 보고 싶은데 볼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고 해서, 혹시 그때 창작이나 상영하셨던 분들 계시면 그때 자료들 가운데 혹시 소장하고 계신 것이 있는지 여쭤보거든요.

 

: 제가 이 친구(김상현 감독)한테 물어볼게요. 제가 '핀다' 얘기를 꼭 해야 될 것 같다 싶었던 게, 독립영화라고 하면은 그 안의 흐름에서는 무조건 이렇게 기록이 남아야 될 것 같고 그렇잖아요. 실제로 독립영화사에 핀다가 적혀 있긴 하거든요. 그런데 뭔가 좀 제가 생각하기에는 좀 아쉽게 혹은 애매하게 되어 있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네마테크라는 게 있을 때, 꼭 시네마테크가 표방하는 그런 활동들만이 아니라 실제로 시네마테크라는 가치를 확립하려면 오히려 더 담으려고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때 대구에서 영상을 만들었던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대구의 모든 사람들을 총망라하거나 그런 거는 좀 불가능했던 것 같고요. ‘핀다가 상영회에서 다뤘던 장애여성, 성폭력 피해 여성, 레즈비언, 이주 여성, 이런 식의 우리가 관심 가지고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를 주제로 굉장히 젊은 친구들, 영화 아카데미조차 가지 않은 친구들이 그냥 카메라 하나 들고 영화를 찍어보자 해서 만들었던 그런 좀 소소한 작품들인 것 같기는 하거든요. 그게 구체적으로 감독하고 작품 목록이 있는지 물어볼게요.

 

 

 

: 그러면 프로그래밍은 김상현 대표님께서 주로 담당하셨던 건가요?

 

: 다 같이 모여가지고 했어요. ‘우리 이번에 이런 주제 해볼까? 좋아, 좋아! !’ 이렇게 했죠. ‘이런 주제 해볼까가 막연한 게 아니라 이 영화가 이번에 서울여성영화제, 국제여성영화제 상영되는데 이거 꼭 가져왔으면 좋겠어일 때도 있고, ‘어떤 여성영화제작자 누군가가 영화를 만들었는데 우리 이거 대구에서 상영하자이런 식일 때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영화가 생동감 있게 만들어지는 그 과정에서 이렇게 저절로 나오는 거 있잖아요.

 

나 그런 거 보면 신기하다니까요. 저는 영화 떼서 오는 걸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원승환 대표와 김상현 대표가 누가 영화 만들었다는 소식을 가지고 영화제까지 쫙 만드는 게, 그 이야기를 엮어서 구체적으로 상영회로 만드는 그거는 아직도 경이롭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게 세상을 보는 힘이 있어서 그렇다고 저는 생각은 들어요. 그러니까 지금 이 시기에는 이런 움직임이 있어. 근데 이 움직임은 우리가 함께 볼만해. 그러니까 같이 보자.” 딱 그 정도 얘기인 것 같아서요.

 

그리고 여기 (‘핀다상영회 목록에) 있는 영화들 다 보여주고 싶네요. '아메닉' 시절과 핀다시절에 봤던 영화들을 생각해보면 관객으로서 저한테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너무 많았던 거잖아요. 그거는 큰 행운이었구나 싶어요. ‘내가 오히려 그걸 못 누렸구나라고 생각이 들 정도의 느낌이네요.

 

 

 

6. 이영은의 영화 보기, 혹은 영화 공동체

 

: 여러분들 우리 그 얘기할까요? 자기 인생에 나한테 정말 마음에 남은 영화가 있다면 이런 거다 하고 짧게라도 한 개씩 얘기해 주세요. 여러분들에 대해서 궁금해지기 시작했거든요.

 

류승원 : 저는 브레송의 <소매치기>가 저한테 제일 남아 있는 영화인 것 같아요.

 

: 저는 피에트로 마르첼로의 <마틴 에덴>인 것 같아요.

 

: <타이타닉>인 것 같아요.

 

손영웅 : 키아로스타미 영화, 여러 개인 것 같은데 <체리향기>도 좋아하고, <사랑에 빠진 것처럼>도 좋아해요.

 

이라진 : 저는 니콜라스 레이의 <쟈니 기타>.

 

: 기분이 막 좋아진다! 그러니까 영화 얘기하는 이게 그 사람을 알아가는 거고, 내가 좀 더 이렇게 풍요로워지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 자체로 너무 좋은 것 같아.

 

: 선생님께서는?

 

: 저도 제가 아차 했어요. 저도 대답해야 되는 거여 가지고. 이게 잠깐만, 근데 저 솔직히 얘기하자면 어릴 때 봤던 영화에 대한 기억은 영원히 너무 아름답고 멋지잖아요. 그때 아빠가 할부로 비디오를 사가지고 중학교 때 집에 비디오가 있었어요. 그걸 녹화를 하셔야 되거든요, TV에서 틀어주면. 그래서 <라붐2>를 녹화해서 수십 번 너무 좋아서 계속 보고요. <귀여운 반항아>를 또 그렇게 수십 번을 봤거든요. 그리고 이제 영원히 프랑스 여자들에게 사랑에 빠진 거죠. 제 기억에 제 인생의 영화는 일단은 그 둘이고. 그리고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저는 초등학교 때 MBC 주말의 명화로 봤는데 정말로 좋아하거든요. 그렇게 뭔가 그냥 너무나 사랑스럽고, 그 사람이 모든 내면이 사랑스럽게 드러나는 그런 여자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아요.

 

: 그런 작품들 중에서 지금까지도 계속 보게 되는 영화가 있으세요?

 

: 최근에 그런 방식으로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만나게 된 경험이 너무 없는 것 같아요. 영화와 멀어졌다는 느낌도 사실은 좀 받기 시작했고. 좋아하는 영화는 여전히 많고 또 너무 좋았던 영화는 많은데, 다른 사람한테 내가 그 영화를 이래서 좋아한다는 얘기를 정말 너무 말해주고 싶지는 않고 좀 약간 말하면 이해 못 받을 것 같아서 나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고 그런 느낌이 좀 더 크네요. 그런 영화중에 대표적인 게 <아수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감독 중에 한 명이 이게 그 사람이겠구나 이렇게 딱 되기는 했거든요. 근데 그게 <서울의 봄> 때문에하여튼 복잡한 마음이에요.

 

 

 

: 요 몇 년 전에 오오극장 통해서 관객 모임을 새로 계획하셨다고 얘기를 들었어요.

 

: 모임 했어요. 사람 모으는 거 되게 잘하거든요. 아무한테나 이렇게 좀 가볍게 그냥 잠깐 만나가지고 영화 보고 얘기하고 놀면 된다 그러면 사람들이 흔쾌히 오케이 하거든요. 근데 이제 그 내용을 채우는 거에 있어가지고 여전히 막연했던 게 있는데 그냥 그래도 재밌었던 것 같아요. 영화 보고 그냥 영화 얘기하면, 우리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걸로 충분하잖아요. 그리고 이 영화 볼 테니까 같이 와 했을 때 그 영화 보고 싶은 사람만 오니까 딱 그 정도, 그런 소모임은 그걸로 충분히 내용을 채운 거니까 재밌었던 것 같아요.

 

: 앞으로도 그런 모임을 계획하실 생각이 있으세요?

 

: 이제 이걸 좀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이 생각을 했던 게, 그냥 모인 김에 영화를 재밌게 본다는 거, 친교를 하는 거 말고 다른 거가 특별히 남지는 않으니까 내가 너무 내용 없이 사람들을 모았구나 라고 조금 좀 반성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리고 다른 것들에 좀 더 집중해야 되고 그럴 시기가 오면서 사실은 접게 된 것도 있어요.

 

근데 그 모임도 저 혼자 한 게 아니에요. 지금 오오극장에 일하시는 노혜진 씨랑 저랑 오오극장 창립하고 난 다음에 놀러 가서 너무 재밌어가지고 눌러 붙어 있다가 노혜진 씨는 거기에 상근하고 저는 계속 모임하고 그랬던 거예요. 둘이 같이 그런 데 다니는 걸 좋아했거든요. 실제로 노혜진 씨랑 같이 만든 거예요.

 

전 그때 왔던 그 젊은 친구들하고 오오극장에서 같이 영화 보고 그랬던 게 좋기는 되게 좋았거든요. 그 사람들한테 내가 어떻게 보였을까 궁금한 면도 있고 그냥 착한 어른으로 보였으면 참 좋았겠는데 어땠을지 잘 모르겠어요.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