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관객과의 대화 기록 2023.06.17.
참석 장건재 감독
진행 류승원 모더레이터
기록 정채연
류승원 : 안녕하세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의 진행을 맡은 류승원 관객 프로그래머라고 합니다.
장건재 : 방금 보신 영화를 연출한 장건재라고 합니다.
류승원 : 본격적으로 영화에 대한 질문을 나눠볼 텐데요. 먼저 간단하게 이 영화를 어떻게 해서 시작하게 되었는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장건재 : 저는 김주령 배우와 <잠 못 드는 밤>이라는 영화를 같이 촬영한 적이 있는데, 주령 배우가 그런 작업을 한 번 더 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종종 했었어요. 저도 언젠가 주령 배우와 작업을 한 번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한 켠에 있었고요. 당시에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영화 제작 현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기였어요. 저도 준비하고 있던 영화 작업이 연기되어서, 제가 주령 배우한테 김주령을 위한, 김주령에 의한, 김주령의 영화를 한 편 써봐도 되겠냐고 묻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때 썼던 시나리오의 대부분이 연구실에서의 주희를 다루는 이야기였어요. 학교를 그만두기로 한 대학교 선생 주희가 연구실을 정리하러 오는 날 2시간 동안의 이야기. 마침 공교롭게도 그날 여러 사람들이 그의 방을 방문한다. 거기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대본을 쓰고, 짧은 파일럿으로 5-6분 정도 되는 단편을 찍었어요.
그런 중에 안민영 배우님을 비롯한 연극 배우들과 워크숍을 하게 됐어요. 그때 단편 영화를 찍어보면서 영화 작업이 연극 무대랑 어떻게 다른지 직접 확인해보자는 기획을 했었거든요. 주희 이야기는 이미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두 이야기를 합쳐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같은 시간대를 배경으로 한쪽은 오늘 초연을 올려야 하는 극단의 두 시간을 보여주고, 한쪽은 주희를 보여주는 거죠. 양쪽에선 서로 모르는 채로 각각 촬영을 했어요. 이 둘을 과연 합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양쪽에 이 영화가 다른 영화랑 섞일 것 같다고 알렸고요.
촬영을 2020년도 늦가을에 시작해서 작년 4월 1일에 크랭크업했거든요. 그때는 여러 촬영들을 하고 있어서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영화를 찍어보자고 주령 배우하고도 얘기를 했었어요. 주령 배우가 드라마 촬영 때문에 머리를 똑단발로 자르셨다가 6-7개월쯤 길러서 오신 적도 있고요. 그렇게 긴 간극이 있었어요. 그렇게 촬영 마치고, 올해 가을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입니다.
류승원 : 간극 얘기가 나왔는데, 다음 질문으로 그걸 여쭤보고 싶어요. 2015년 <한여름의 판타지아> 이후 4-5년 후에 <달이 지는 밤>이 나오고, 그다음에 이번 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가 나왔어요.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포함한 이전 영화들을 한 갈래로, <달이 지는 밤>부터 이번 영화를 한 갈래로 묶어본다면, 둘 사이의 차이가 죽음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전 영화들과 다르게 감독님의 영화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아른거리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혹시 죽음을 자각하면서 작업을 하신 건지, 아니면 찍다 보니 두 작품 모두가 죽음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가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장건재 : 의식하면서 대본을 썼어요. 30대까지는 죽음이 굉장히 관념적인 의미였는데, 40대 넘어가면서 굉장히 실재적 공포로 다가오더라고요. 어릴 때는 누군가의 부모님 초상에 많이 가게 됐는데, 40대가 되고 나니 동료들이 죽는 경우도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아이를 가지면서 삶의 유한성을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달이 지는 밤>도 그렇고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도 그렇고요.
류승원 : <한여름의 판타지아>나 <회오리 바람>, <잠 못 드는 밤>에서는 영화의 순간들을 붙잡으려고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가령 <회오리 바람>은 여성을 붙잡으려는 남성의 이야기였고, <한여름의 판타지아>도 마지막 키스 장면에서 순간들을 잡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반면에 <잠 못 드는 밤>은 붙잡히지 않는 불안감에 관한 영화 같거든요. 근데 <달이 지는 밤> 이후로는 순간들을 단순히 붙잡는 게 아니라 응시한다는 개념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전과 최근을 비교해서 영화를 찍을 때 변화가 있었다면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장건재 : 이게 답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욕망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전의 작업들은 제가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욕망이 강했어요. 영화적인 방식으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성취나, 저 나름대로 시도해 보고 싶은 실험에 대한 욕망들이요. 다시 말해 작업에 내적 외적인 목표가 있었다면, 그 이후의 작업들은 좀 달라졌어요. 이를테면 원래는 어떤 장면이 엔지가 나면 오케이가 날 때까지 몇 번이고 찍었어요. 그렇게 같은 장면을 60번 정도 반복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체력도 집중력도 부족해서 그렇게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지금은 몇 번 정도 해보고 안 되면 포기해요. 그런데 그 포기가 저한테 되게 중요한 요소예요. 작업을 빌미로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잖아요. 그래서 이 영화는 그냥 무리하지 않고 시간을 같이 보내는 의미에서의 작업을 하자는 마음이었어요. 그러니까 성취를 위한 작업, 근사한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한 작업이 되는 것을 좀 지양했던 것 같아요.
류승원 : 주희가 가르치는 학교 로케이션이 용인대학교예요. 직접 몸을 담으셨던 곳이잖아요. 단순히 자신이 잘 아는 공간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그 공간을 특별히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장건재 : 그때 당시가 코로나 시국이어서 학교가 폐쇄됐었거든요. 학생들은 못 들어왔지만, 학교 선생은 들어갈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아무도 없는 건물을 마음대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찍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류승원 : 주희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가 은정이었어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은정은 단독 신이 먼저 나와요. 그리고 은정과 주희의 만남이 성사되는데 은정이라는 인물만 따로 단독 씬을 찍은 이유가 있을까요?
장건재 : 주희와 은정은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죠. 은정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갖고 있어서,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지만 그 말들을 아끼고 머뭇거리잖아요. 주희는 아낌없이 얘기해 줄 수 있는 걸 다 얘기해 주고요. 그래서 은정이 주희의 결혼 생활이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릴 때, 주희가 은정을 쳐다볼 수밖에 없는 그 장면이 긴장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울면 보통 사람들은 의아해하거든요. 저는 주희가 아낌없이 말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진 인물이기 때문에 그냥 얘기해줄 수 있는 걸 얘기해주고, 그것이 상대를 인정할 건 인정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두 사람의 친밀함을 긴장감 있게 찍고 싶었어요.
류승원 : 저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던 게 그림들이 병원에 배치가 돼 있어요. 실제로는 배치가 안 돼 있을 것 같은 공간에 그림들이 배치가 돼 있고, 작업실은 포스터나 그림 같은 걸로 도배되어 있고요. 감독님이 이전의 영화들과 달리 아기자기하게 화면을 구성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미술 작업에 신경 쓰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장건재 : 저희가 미술 감독이 특별히 있지는 않았어요. 병원도 특별히 미술 작업을 하지 않았고요. 병원 복도에 원래 걸려 있던 작품들이 영화에 위배된다고 생각을 안 해서 특별히 교체하지 않았을 뿐이에요. 병원이 가슴, 유방 내과 쪽이기는 한데 트랜스젠더 성형을 위주로 하는 곳이었어요. 미용 성형을 하는 병원이어서 다른 병원들보다는 모던하면서 컬러풀한 공간이거든요. 아마 그래서 그렇게 느끼신 것 같아요.
미술 작업이라면 오히려 주희의 연구실을 만들기 위해서 신경을 썼던 기억이 나네요. 주희가 선생 이전에 배우 활동을 했다는 걸 보여주려고 연구실에 소품을 좀 배치했습니다.
류승원 : 호진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은데요. 호진이 쓴 글 중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게 “자유를 얻어야 이길 수 있다”는 말이거든요. 호진이 배우들에게 디렉팅을 할 때, 초반에 배우가 맞추지 못하니까 호진이 밀도 있게 해달라는 주문을 해요. 그 이후에 배우들이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으니까 본인이 선뜻 하나를 정하지 못하고 계속 갈팡질팡 지켜보거든요.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호진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감독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장건재 : 호진이 다루는 죽음은 관념적인 죽음이에요. 호진이 말하는 ‘죽음을 이길 수 있다’는 게 불사의 의미, 죽음에 이기고 지는 문제라기보다는 넘어서야 된다는 뜻에 가까워요. 말하자면 정작 대본을 쓴 호진이 실제로 죽음에 맞닥뜨리게 되는데, 죽음이라고 하는 것도 결과적으로는 관념적인 게 아니라 부인이 사라지는 경험이잖아요. 더 이상 없음, 만날 수 없음의 경험이요. 어떻게 보면 배우들에게 얘기할 때는 호진도 관념적인 죽음을 얘기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 맞닥뜨릴 실제 파트너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 혹은 또 그렇게 언어화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에서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설정을 준 거고요.
그리고 배우들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는 자기 방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죠. 제가 호진을 20세기 유물 같은 인간이라고 소개를 하는데요. 20세기의 방식이라고 하는 것, 강력한 리더가 있고 그 리더를 따라가는 방식이 극단에도 적용이 될 것 같아요. 무대 작업에도 그런 고전적인 면이 있으니까요. 전형적일 수는 있다고 생각을 해요.
류승원 : 제가 정말 궁금했던 질문인데, 이 영화는 사실 기존의 리얼리즘적인 독립 영화들과는 계보가 좀 달라 보였어요. 특히나 주희가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 이후에 그것이 꿈이었다는 듯이 호진이 먼저 눈을 뜨는 지점인데요. 호진도 매진이 됐다는 후배의 말을 듣고 준비를 하러 나가면 다시 주희가 잠을 자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거든요. 꿈인지 아닌지, 경험의 주체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배달부가 오는데, 그 배달부가 호진의 연극 대사를 펼치는 지유에게 닿으면서 영화가 막을 내린단 말이죠. 제가 요즘 독립영화에서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한데, 만약에 이런 환상적인 지점이 없었다면 이 영화가 작동했을까 싶었어요. 왜냐하면 감독님께서도 이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을 실제로 다시 만나게 된 거잖아요.
장건재 : 자세히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장면은 다 꿈이고, 두 꿈이 마주 보고 있는 장면이에요. 누가 누구를 꾸는 게 아니라 엄마가 등장하는 장면은 호진이 꾸는 꿈이고, 호진이 얘기하는 장면은 주희의 꿈이거든요. 꿈에서 빠져나오는 장면이 중국집 배달부를 만나는 장면이고요. 저는 처음엔 배달부 장면이 영화의 엔딩이라고 판단했어요. 실제로 배달 노동자가 밤에 학교 안에 배달을 많이 다니시는데, 배달 노동자들을 보면 예술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하고 비슷한 또래인 경우가 많거든요. 이런 상반되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 날 조금 기묘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배달부가 늦게까지 독백 연습을 하고 있는 사람을 봤을 때의 감흥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또 지유는 예술을 해야 될지 먹고 살아야 될지 고민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두 장면이 만나면 영화가 끝나겠다고 생각을 하고 촬영을 끝내려고 했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지만요.
류승원 : 이제 마칠 시간이 다 돼서 오늘 GV 하신 간단한 소감과 차기작 정보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장건재 : 지금 보신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나온 버전이고, 개봉을 오래 가을께 해요. 그래서 올 여름엔 이 영화의 후반 작업을 조금 더 매만질 것 같고요. 최근에 <한국이 싫어서>라는 영화의 촬영을 끝내고 편집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독립영화가 할 수 있는 최대 사이즈로 만들었거든요. 또 코로나 시국 때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처럼 작업한 장편 영화가 두 편이 더 있어요. 그 영화들 편집 막바지여서 순차적으로 마무리를 할 생각입니다.
류승원 : 모든 영화들이 오오극장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관객 여러분께 인사 한 번 부탁드릴게요.
장건재 : 이렇게 주말에 봐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오오극장에서 또 뵐 수 있으면 좋겠고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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