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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V 모먼트

<희수> 감정원 감독, 공민정 배우 / 2023.05.21.

<희수> 관객과의 대화 기록 2023.05.21 

참석 감정원 감독, 공민정 배우

진행 전가경 사월의눈 대표 

기록 정채연

 

전가경 : 오늘 gv 진행을 맡게 된 전가경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오늘이 <희수>의 마지막 상영이었어요. 이 영화가 작년 12월 말에 상영을 시작한 이후 대구로 돌아와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상당히 의미 있는 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뜻깊은 자리에 두 분을 모시게 되어서 참 영광입니다. 먼저 두 분 각자 소개 부탁드립니다.

감정원 : 네 안녕하세요. <희수>를 만든 감정원이라고 합니다.

공민정 : 안녕하세요. <희수>에서 희수를 연기한 공민정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전가경 : 실제 감독님의 친구 분이 “내가 이렇게 일만 하다가 죽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고 말한 데서 이 영화가 출발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많은 창작자들이 실제 인물을 매개로 창작을 하지만, 비극적인 내용을 다룰 경우에는 훨씬 조심스러워질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을 어떻게 조율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감정원 : 일단 제 친구는 아주 건강하게 잘 살아 있고요. 시나리오를 쓰면서 친구한테 영화 속 희수는 죽는데 괜찮겠냐고 몇 번이나 확인을 받았습니다. 제가 서른에 이 영화를 찍었어요. 20대를 보내고 청년들의 노동의 이야기를 영화로 담고 싶어서 친구와 잘 협의 끝에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전가경 : 이 영화에 촬영 감독으로 참여하셨던 최창환 감독님의 제주도 작업실에서 감정원 감독님이 공민정 배우님을 우연히 만나셨다고 들었어요. 그 순간 공민정 배우님이 희수 같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해요. 감독님은 시나리오 쓸 때 배우의 형상을 떠올리면서 쓰시는 건지 아니면 직관적으로 어떤 배우를 보는 순간 저 사람이다라고 감이 오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감정원 : <희수>는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형상을 그리지 못했었어요. 그런데 공민정 배우님이 짧은 머리에 긴 코트를 입고 멀리서 휘적휘적 걸어오는 모습을 보는 순간 희수가 나타났구나, 직관적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전가경 : 배우님께서는 시나리오를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공민정 : 사실 제가 이 캐릭터를 맡을 거라는 생각 없이 가볍게 시나리오를 읽었기 때문에, 캐릭터보다 전체적인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나요. 대사가 거의 없어서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기분이 좀 이상했고요.


전가경 : 배우 입장에서는 어려운 연기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대사가 거의 없다 보니, 감정이나 표정만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되게 편하게 임하셨다고 들었어요. 이 부분을 조금 더 부연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공민정 : <희수>를 만나기 이전에 작업들을 생각해 보면, 그 전까지 대외적으로 저에게 원하는 이미지나 역할들이 밝고 명랑한 성격이었어요. 물론 그 모습도 제 모습이지만 원래 타고나는 성격이 있잖아요. 내가 좀 편한 모습이나 정서가 희수와 많이 맞닿아 있어서, 내가 희수라는 캐릭터를 굳이 만든다기보다 제 모습들을 보여드리면 될 것 같았어요. 대사가 없어도 지문을 보면 어떤 인물인지 직관적으로 느낌이 왔고, 구체적인 답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하면 희수가 될 것 같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 믿음을 가지기까지 감독님하고 수차례 얘기를 했고요.

 

전가경 : 이 영화에 대사가 거의 없는데, 감독님은 왜 그렇게 설정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감정원 : 살면서 말로 설명되는 것들도 있지만 말하지 않아도 설명이 되는 것들이 더 많다고 느끼고 있어요. 또 첫 장편 영화여서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보고 싶었고요. 영화라는 장르에는 대사 말고도 많은 요소들이 있잖아요. 대사 없이도 감정이 전달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전가경 : <희수>는 관객이 인물에게 이입을 하려는 순간 장면이 전환되면서 이입을 차단해버리더라고요. 그러면서 오히려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캐릭터의 삶이 아니라 감정의 구조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많은 관객들이 <희수>를 보고 희수 한 명으로 끝내지 않고 ‘많은 희수들’이라는 표현을 하시는 것 같아요. 여기서 오는 확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요즘에도 산재 관련 피해자들 소식이 많이 들려오는데, 이와 관련 지어 생각해볼 수 있도록 비어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감정원 : 영화 속에 희수가 영혼, 죽은 인물이다 보니까 비워내는 작업을 많이 했어요. 캐릭터의 일상과 관계를 많이 보여주지 않고도 어떻게 하면 그의 정서가 전달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희수>는 채워나가기보다는 많이 걷어내는 작업이었어요. 또 촬영을 하면서 느껴지는 희수의 감정을 보면서 바뀌기도 했고요. 그렇게 열어놓고 작업을 했었습니다.

전가경 : 희수가 여행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돌아가신 분들이라고 들었어요. 결국에는 죽음 이후의 사후 세계를 시각화해 나가는 방식인데, 그 과정에서 희수가 위로를 받잖아요.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이승을 떠나게 되는데 그 설정에 대해서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감정원 : 희수가 죽어서 떠난 여행이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 또한 영혼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해도 삶과 죽음이 너무나 맞닿아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했고요.


전가경 : 여행에서 희수가 횟집 사장님, 중학생, 중년 부인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잖아요.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하나하나 이유를 갖고 설정하셨을 것 같아요.

감정원 : 희수한테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세상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지만. 외로워보이는 희수에게 아빠처럼, 엄마처럼, 남동생처럼, 할머니처럼 보일 수 있는 가족들을 만나게 해주고, 그들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가경 : 아주 오랜만에 <희수> GV를 하신다고 들었는데, 아마 오늘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배우님은 2023년도에 희수를 마주하는 느낌이 어떠세요?

공민정 : 지금 내가 <희수>를 찍으면 다른 희수가 나왔겠지 싶어요. 그때 제가 할 수 있었던 희수의 연기였던 것 같고 좀 울컥해요. <희수>는 마음을 좀 많이 쓴 작업이어서, 오늘 GV하러 왔는데 진짜 희수를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되게 이상하더라고요. 오늘 잘 보내주고 집에 가고 싶습니다.

 

전가경 : 감독님은 어떠세요? 지금 5년 만에 다시 희수를 보내는 날이기도 하잖아요.

감정원 : 오랫동안 같이 있기도 해서 이제는 좀 갔으면 좋겠어요. 사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오는 길에 조금 울컥하기도 했는데, 오랜만에 극장에서 관객분들을 뵈니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전가경 : 대구 이야기로 넘어가도록 할게요. 사실 <희수>는 지역성이 아주 강하게 드러나는 영화거든요. 감독님 같은 경우는 상당히 오랜 시간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을 하셨고, 지역에 대한 애정도 갖고 계시는 것 같아요. 또 얼핏 다음 영화 얘기 들어보면 대구와 관련된 이야기인 것 같더라고요. <희수>에서 대구가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나요?

감정원 : 3호선 타고 공단역을 지나가는데 비산동 염색공단 쪽에 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더라고요. 그 이미지에서 시작했어요. 제가 대구에서 나고 자랐는데, 익숙한 공간에서 영화를 찍는 것은 저한테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저는 공간에서 이야기가 많이 시작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구라는 공간이 담겼어요. 또 강원도로 여행을 가는 건, 대구에서 무궁화호 타고 5시간 반이 걸려요. 영화 속 희수에게 물리적으로나 심적으로나 굉장히 먼 곳이었을 것 같았어요. 그 먼 곳으로 여행을 한번 떠나보고 싶지 않았을까라고 해서 대구와 강원도라는 공간을 선택을 했습니다.


전가경 : 저도 한번 염색공단을 지나간 적이 있는데, 20세기 초반에나 보았을 법한 굴뚝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거든요. 아직도 대구 같은 대도시에 이런 곳이 있나 싶더라고요. 공민정 배우님은 공단에 대한 인상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제가 감독님 통해서 듣기로는 엄청 거친 질감의 장소라고 하더라고요.

공민정 : 저도 사실 공단을 가볼 일이 없었는데, 위에서 연기 나오는 굴뚝들을 바라보면서 되게 생소하더라고요. 처음에 공장을 갔을 때 기계들이 너무 커서 사람보다 기계가 더 크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여기 하루 종일 있으면 답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저희가 갔던 곳은 되게 깨끗한 곳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들이 너무 크고 위험해서 실제로 재해가 많이 일어난다는 걸 알게 돼서 마음이 많이 쓰였어요.

전가경 : 제가 감독님 통해 듣기로는 연구소라 그나마 깨끗한 환경이었다고 들었어요.

감정원 : 비산동 염색 공단에 로케이션 헌팅을 가서 거의 서른 군데의 공장에 가봤어요. 그런데 촬영 허가를 받지 못했거든요. 또 제가 직접 촬영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요. 섬유 염색약이 잠깐만 냄새를 맡아도 어지러울 정도로 굉장히 지독해요. 그리고 아무래도 실제로 거기서 노동하시는 분들은 공장 환경을 노출하는 걸 굉장히 꺼리시죠. 그래서 염색 공단 안에 있는 염색 연구소에 허가를 받아서 촬영을 했어요. 그래서 실제 공장이 아니고 연구소라 어떻게 보일까, 관객분들이 어떻게 생각을 할까, 실제로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실까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도 대형 기계들,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은 기계들이 있었기 때문에 촬영을 진행을 했었습니다.

 

전가경 : <희수>가 다큐멘터리 영화는 아니지만, 현장을 기반으로 공장 실내도 촬영하기 때문에 고증이나 리서치도 중요했을 것 같아요. 사실 관객에겐 작업복이나 염색 공정 과정이 너무 낯설잖아요. 이게 뭐하는 장면인지 잘 모르겠고, 사실 희수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도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거든요. 그런 것들을 어떻게 공부하시고 자문을 구하셨는지 그 과정이 좀 궁금해요.

감정원 : 실제로 연구소에 전문가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기계나 공정 과정을 많이 여쭤봤어요. 희수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은 사고를 당하는 모습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천에 가려진 채로 연출을 했고요. 기계들을 다 둘러보고 공장에 가서 결정을 했어요.

 


전가경 : 왜 영화에 기차가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을 하는지 궁금해요. 엽서 그림으로 파리의 상 아자르 기차역이 등장하기도 하고, 또 <희수>의 영어 제목이 ,<the train passed by>잖아요. 저는 되게 탁월한 번역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냥 <heesoo>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영문에는 왜 train이 선택되었는지 궁금해요. 또 기차와 기차역 모티브는 어떤 이유로 갖고 오신 건지 묻고 싶어요.

감정원 : 일단 삶이 한순간도 멈춰지는 순간이 없잖아요. 지금 이 순간도 흐르고 있고. 기차에서 보는 풍경들이 계속 흐르고 있는 것이 삶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여행을 떠나고 아무도 찾지 않는 폐역에서 텐트를 치고 혼자 잠도 자고 쉬기도 하는, 늘 흐르고 있다는 그 이미지가 기차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저한테는 그림 속에 등장하는 옛날 증기선들이 염색 공장의 풍광과 굉장히 비슷해 보였는데, 희수한테는 떠나고 싶은 여행지, 로망일 것 같았고요.

전가경 : 기차 타고 이동하는 장면들은 실제로 이동 중에 찍으신 건가요? 다섯 시간이나 이동을 했다고 들어서요.

감정원 : 스태프들하고 기차 타고 이동하면서 찍었어요.

전가경 : 감독님은 그 먼 거리를 상당히 좀 많이 오가셨기도 했겠네요.

감정원 : 촬영장에는 딱 두 번 갔습니다. 촬영할 때가 두 번째였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마음으로 촬영지에 다녀왔어요. 동남횟집 맛있어요. 그 자리에 아직 있고 학선이가 봤던 바다도 가봤는데, 여행하는 마음으로 다녀도 너무 좋더라고요.

전가경 : 아마 영화 매니아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사실 박찬욱 감독도 마찬가지고 플레인 아카이브라는 출판사도 마찬가지고 영화가 나오면 책으로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거든요. 그래서 영화를 책으로 남기는 게 아주 이례적인 사례는 아니에요. 감독님께서 <희수>로 책을 만들고 싶다고 저희한테 먼저 연락을 주셨고, 결과적으로 이 책이 나왔는데요. 제가 오늘 처음 질문을 드려요. 왜 <희수>를 책으로 만들고 싶으셨던 건가요?

감정원 : 영화에 굉장히 많은 요소들이 있잖아요. 음악도 있고 촬영 감독님이 담아주신 미장센도 있는데, 이런 것들로 이뤄진 영화를 상영으로만 그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을 남기고 싶었어요.

전가경 : 공민정 배우님께서는 어제 책을 얼핏 먼저 보시고 제대로는 지금 처음 받아보신 건데 첫 인상이 어떠셨어요?

공민정 : 책 모양이 길쭉해서 특이하다고 생각했어요. <희수>가 저에게도 너무 소중했던 작업이기 때문에 이렇게 책이 있으면 간직하기 좋을 것 같아요. <희수>의 한순간 한 순간이 그냥 지나친 적이 없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있었는지 다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이렇게 5년이 흘렀는데도 꿈 같기도 하고 정말 지나가버린 기차 같기도 하네요.

전가경 : 저희 시간상 GV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독님과 배우님 인사 한 번씩 부탁드려요.

 

감정원 : 오늘이 <희수> 마지막 상영인데, 많은 관객 분들이 함께해주셔서 희수를 잘 배웅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공민정 : 오랜만에 대구에 와서 대구 관객 여러분을 만나뵐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덕분에 저도 오늘 희수를 잘 보내준 것 같아요. 긴 시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가경 : 오늘 화창한 5월이라 야외에 놀러 가기 참 좋은 날인데, 소중한 시간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GV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