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다> 김현정 감독, 이설 배우 / 2023.04.16.

<흐르다> 관객과의 대화 기록 2023.04.16 

참석 김현정 감독, 이설 배우

진행 김주리 모더레이터

기록 정채연

 

김주리 : 안녕하세요. 오늘은 여러분과 <흐르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본격적인 GV에 앞서 감독님과 배우님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김현정 : 네 안녕하세요. <흐르다> 연출한 김현정입니다. <흐르다> 공식 GV가 오늘이 마지막이거든요. 마치 고향에 다시 돌아온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 GV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설 : 네 안녕하세요. <흐르다>에서 최진영 역을 맡은 이설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주리 : 관객석에서 질문을 준비하실 동안 우선 제가 몇 가지 질문을 드릴 텐데요. 먼저 감독님께 이 작품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또 이 작품이 감독님의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인데 준비를 하면서 아무래도 단편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체감하신 지점이 있을까요?

 

김현정 : 저도 이전에 단편들을 작업하면서 어느 정도 편수가 쌓이다 보니 장편을 너무 하고 싶고, 마치 해야 될 것 같은 숙제처럼 남아 있어서 고민이 많았어요. 단편 때도 그랬지만 그 당시 저에게 가장 큰 궁금증과 이슈가 될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게 저한테는 부녀 관계였습니다. 아버지와 저의 아주 개인적으로 풀리지 않는 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한편으로는 부녀 관계를 다룬 영화들을 접하기가 어렵다 보니까 제가 보고 싶더라고요. 또 저는 나름 단편들을 작업하는 게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장편은 길이가 길어지는 정도려나 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어요. 보통 독립영화는 섭외를 직접 하는데, 코로나가 한창일 때 준비를 하다 보니 영화 속에 중요한 장소나 사람들을 섭외할 때 만나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촬영 과정에서도 변수가 많아서 대응이 좀 미숙했어요. 단편보다 촬영 기간도 길다 보니 변수가 워낙 많이 발생해서 그런 점이 버거웠던 것 같습니다.

김주리 : 제가 GV를 준비하면서 배우님의 인터뷰를 찾아보니까, 감독님의 단편 작품들을 이미 접하신 상태로 시나리오를 받으셨다고 들었거든요. 배우님은 시나리오를 받아보시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이설 : 일단 감독님을 만나게 된 계기는 당시 회사 매니저님이 감독님의 공고를 보고 연락을 드렸고, 감독님께서도 관심을 가져주셔서 처음 만나게 됐어요. 저도 영화제 수상작들은 좀 챙겨보는 편인데, 감독님이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만장일치로 대상을 받았던 전설적인 히스토리 덕분에 저는 감독님을 알고 있었어요. 어떤 분일지 궁금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까 너무 좋으시더라고요. 시나리오도 물론 너무 재밌었고요. 그렇게 해서 같이 하게 됐습니다.

 

김주리 :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의 내용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해볼까요. 가장 먼저 ‘진영’에 대한 이야기인데,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진영’에게서 일정한 스트레스와 사람이라면 마땅히 가질 만한 입체적인 부분이 느껴졌어요. 두 분께서는 진영을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계신지 또 인물을 구축하기 위해서 신경을 쓰셨던 부분은 어떤 부분이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현정 : 영화 속에서 묘사된 ‘진영’은 많이 억눌려 있는 게 가장 지배적인 성향이 아니었을까요. 진영은 자기가 원하는 아주 사소한 것도 표현하기가 여의치 않은 인물이에요. 그럼에도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들을 하는데, 영화에서는 외부적 상황에 부딪히고 서른 이전의 녹록치 않은 삶 때문에 고민이 많고 결핍되고 부딪히는 인물로 설정을 했습니다.

 

김주리 : 코수술을 한다거나 형편에 맞지 않게 자동차를 사는 것들이 저한테는 진영의 억눌림이 튀어나오는 부분으로 느껴졌어요. 배우님께서는 ‘진영’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설 : 노량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중산층에 태어나서 크게 부족한 것도 넘치는 것도 없이 지냈고, 호불호 없는 직업을 선택해서 그냥 남들만큼만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 그 모습은 나에게도 있고 내 친구들에게도 있는, 아주 일반적인 모습이거든요. 그래서 너무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캐릭터를 구축하려고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김주리 : 한편으로 이 작품은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주축으로 진행되는데요. 저는 <흐르다>가 이미 벌어져 버린 사이를 억지로 봉합시키지 않아서 좋았어요. 그렇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두 사람의 사이가 달라지잖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어떻게 보여줄지 감독님과 배우님 모두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김현정 :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대화가 없던 아버지와 함께하는 상황을 많이 상상했었거든요. 현실적으로 둘이 계속 얘기하고 부딪혀야 하는 상황들이 계속 벌어지니, 거기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화들은 어떤 걸까 이런 거요. 영화 톤이 워낙 잔잔해서 그렇게 보이시진 않겠지만, 사실 드러난 사건만 보면 큰일이 많거든요. 일련의 상황들을 둘이 함께 부딪혔기 때문에 일종의 동지처럼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연민이 생겨날 거라 생각했어요. 마지막이 되면 물리적으로는 어느 정도 독립되어 있지만 그래도 서로를 응원하는 정도가 제가 생각했을 때 가장 현실적인 관계였어요. 또 어려운 가족 관계를 갖고 계신 분들에게 제가 이 작품을 통해 보여드리고 싶었던 적당한 거리였던 것 같아요.

 

이설 : 부녀 관계의 변화를 구축하려고 뭔가를 계산하진 않았어요. 저는 우리 영화가 현실적인 것을 많이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관계의 흐름마저도 현실적으로 담기지 않았나 싶어요. 왜냐하면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한순간에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일은 잘 없잖아요. 특히 오래된 관계에서 드라마틱하게 서로의 감정이 변하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요.

김주리 : 부녀 관계를 나타내기 위한 장치나 연출들이 곳곳에 있는데, 저는 그중에서도 코라는 메타포가 인상 깊었어요.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어릴 때 사고로 코가 휘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정작 수술을 받는 건 ‘진영’이잖아요. 그래서 이 두 사람의 관계를 드러내기 위해서 코가 사용된 이유가 있을까 궁금해지더라고요.

김현정 : 사실 초고에서는 아버지가 다친 부위가 코가 아니라 팔이었는데, 수정하는 과정에서 둘의 묘한 공통점을 심고 싶어서 부위를 바꿨어요. 둘 다 잘해내고 싶은 욕망이 되게 큰데 현실에서는 녹록치 않다는 공통점이 있죠. 또 코가 각자 문제의 본질적인 원인이 아니잖아요. ‘진영’은 취업이 잘 안 되니까 취업 성형을 한 거고, 아버지도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건데 코 때문에 인생이 안 풀리는 것 같다고 본인만의 강박에 사로잡혀 있죠. 어떤 면에서는 되게 어리석고 어리숙하지만 또 그게 우리들이 사는 모습 같았어요. 저는 그런 게 웃기기도 하지만 아프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삶이 내 마음 같지 않아서 꽂히는 콤플렉스, 강박들을 디테일로 넣어보고자 했습니다.

 

Q : 영화가 멀게 느껴지다가 한순간 가까워지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멀게 느껴지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 같은데요. 감독님이 영화를 통해 부녀 관계에 있어서 가장 하고 싶었던 얘기는 무엇일까요.

 

김현정 : 가족의 굴레인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진영’이 벗어나려다가 다시 잡혀오는 장면들이 꽤나 반복이 되는데요. 제가 왓챠평을 가끔 보는데 너무 재밌는 평이 '지긋지긋한데 걱정돼'. 그 문구가 저도 엄청 와닿았어요. 실제로 가족으로부터 독립하라는 말을 많이 듣잖아요. 우리는 자립해야 되고 한 명의 객체로서 살아내야 한다, 그 말이 맞지만 어렵기 때문에 많이 언급되는 것 같아요. 관객 분들이 해피엔딩 맞냐는 말씀을 많이 해주시는데, 저는 명백히 해피엔딩이라고 설정했어요. 이 영화의 톤을 유지하면서 ‘진영’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도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Q :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적이어서 너무 좋았어요. 전 처음에 워킹홀리데이가 도피성 유학으로 보였거든요. ‘진영’이 어머니의 죽음, 아버지의 감옥행을 겪으면서 결국 현실에 순응하리라 생각했는데 워홀을 선택했더라고요. 무슨 생각으로 워홀을 갔을까요. 또 ‘진영’은 워홀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올까요. 돌아오고 싶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현정 : 저는 처음의 캐나다와 마지막에 ‘진영’이 정말 가게 된 캐나다는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말씀해 주신 것처럼 자기 도피성이 분명 있었다고 봐요. 본인도 큰 기회를 얻고 싶다, 난 이걸 원해, 이렇게 자기를 속이기도 하면서요. 그런데 일련의 상황을 경험한 후에는 그래도 살아내려는 의지를 가지고 선택한 전혀 다른 의미이자 장소로 거듭나요. 그 장소는 ‘진영’이 엄청난 용기로 자기 자신을 대면하면서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저는 ‘진영’이 용기를 내준 것에 응원을 담아서, 또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런 결말을 만들었습니다.

이설 : 부모는 선택할 수 없잖아요. 그냥 태어나면 그 사람이 내 부모인 거고, 아버지가 감옥에 갔지만 그건 아버지의 삶인 거고 나는 나대로의 삶이 있는 거죠. 내가 하고 싶은 게 있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향이 있는데,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거기에 매여서 다시 떠나가지 못하고 고여 있게 된다면, 물이 고이면 썩듯이 그 관계도 굉장히 피폐해질 것 같아요. 각자의 흐름대로 선택하고 흘러가는 내용이기 때문에 저는 ‘진영’의 선택을 응원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런 ‘진영’의 행보를 보면서 누군가 희망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김주리 : 한편으로 <흐르다>의 리얼리티는 단순히 현실을 잘 재현하고 있다는 것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를테면 어머니의 상실을 보여주는 방식을 보면, 좀 잔인하리만지 실무적으로 흘러가는 게 어쩌면 이 영화를 더 시네마틱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긴 암전이 이어진 후에 동사무소에 가서 사망 신고를 하는 자매의 모습이 나오는데요. 죽음을 통상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으로는 장례식이나 유족이 유품을 정리하는 장면이 떠오르는데, <흐르다>는 그런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잖아요. 두 분이 <흐르다>가 상실을 다루는 방식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김현정 : 현실적으로 담아야겠다 생각했고, 사실 제가 잘 모르는 감정이어서 조심스럽긴 했어요. 물론 글을 쓸 때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나기도 했는데, 죽음이라는 드라마틱한 딱 그 순간에만 슬픔이 있고 그 이후가 어떻게 될지 가늠이 안 되더라고요. 아주 큰 슬픔이 잦아든 다음에는 잘 지내다가 한 번씩 아주 예상치 못하게 울컥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진영’이 서랍을 뒤지면서 어머니의 흔적이 굉장히 짙게 남아 있는 물건들을 본다든가, 그냥 어머니 냄새가 맡고 싶어서 어머니가 쓰던 침대에 누워 본다든가, 일상에서 어머니의 흔적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장면들이 있죠. 그래도 현실을 살아가느라 정신이 없다가 마지막에 슬픔이 몰아쳐 오는 방식으로 제 나름의 감정적 상상을 해서 표현했습니다.

이설 : 저는 우리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그 긴 암전 부분이에요. 관객 분들 중에도 그런 분이 계셨을 것 같은데, 처음엔 좀 어리둥절했어요. 설마 영사 사고가 났나 놀라기도 했고요. 그런데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통상적인 장례식 장면이 없어서 저는 신박했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큰 충격을 받으면 눈앞이 새카매진다고 하잖아요. 그걸 영화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하는 장면이어서 저는 그 장면을 정말 좋아하고, 이런 선택을 한 건 우리 영화가 처음이라 자랑스러워요.

 

Q : 김현정 감독님의 영화가 대구에서 제작된 것이라 그런지 대구 관객인 저에게 익숙한 억양이 더 영화에 몰입되게 했던 것 같습니다. 배우님은 사투리로 연기한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또 김현정 감독님이 앞으로 지역을 배경으로 지역의 억양이 들어가는 작품을 촬영하실 건지 또 그것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이설 : 저도 경상도권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사투리로 연기하는 것에 이질감은 없었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런데 경남과 경북에도 사투리 차이가 있잖아요. 전 부산 사투리를 써서, 어미 처리 같은 차이는 감독님과 안민영 선배님께 여쭤보면서 연기했어요.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김현정 :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이 잘 다뤄지지 않는데, 저는 그걸 얘기하는 게 재밌어서 그런 소재를 찾고 영화를 만들려고 해요. 그런데 사투리는 제가 할 만큼 한 것 같아서 좀 고민이 돼요. 사투리를 쓰는 영화는 아무래도 제약이 있거든요. 물론 그것이 갖는 의문스러움과 중의성이 재밌어서 그동안 영화에서 사투리를 써왔지만,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주리 : 저는 이 영화가 현실적이라고 느꼈던 지점 중에 하나가 카메라랑 피사체의 거리였어요. 좀 일관된 거리감을 유지함으로써 인물을 지켜보는 것 같기도 하고 따라가는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인물을 좀 더 잘 관찰하고 거부감 없이 극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어요. 관련해서 두 분께서 생각하셨던 지점이 있을까요?

 

김현정 : 일단 샷 구성 같은 경우는 저와 오래 작업했던 김영현 촬영 감독님하고 함께하면서 완성된 스타일이에요. 사실 <나만 없는 집>도 보면 인물을 비출 때 조금의 거리감이 있거든요. 저는 정적인 샷 안에서 인물 사이의 거리나 위치에 변화를 줘서 관계를 설명하는 게 흥미로웠어요. 그렇게 <나만 없는 집>, <입문반>, 그리고 <흐르다>를 거치면서 그런 스타일이 점점 완성이 된 것 같아요.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가 <흐르다>인 것 같긴 하네요. 좀 지나치다시피 카메라를 고정시켜서 인물의 위치로 설명을 하는 부분이 도드라지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이설 : 저도 카메라와의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연기할 때 굉장히 편했어요. 동선을 처음부터 끝까지 맞추거나 카메라에 갇혀 있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영화를 어떤 사람이 만들고 찍느냐에 따라서 영화가 굉장히 다른 결을 가질 수 있구나 느꼈어요. 시선이나 움직임, 표정, 감정선이 감독님과 정말 닮아 있다고 생각을 했었고, 촬영감독님도 굉장히 조용조용하시고 다정한 분인데 그분의 인간적인 모습들이 녹아든 샷들이 많았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도 결국에 누군가의 시선으로 찍는 거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면서 이분들은 나를, ‘진영’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구나 느낄 수 있어서 저에게도 굉장히 즐겁고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김주리 : 또 저의 개인적인 궁금증 중에 하나인데요. 저는 영화를 보고 나서 이동하는 장면들이 많이 떠올랐어요. 버스를 탄다거나 아니면 길을 걸어가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이게 장면과 장면 사이에 ‘진영’의 감정을 메워주기도 하고 또 영화의 제목처럼 어딘가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도 주는데 감독님이 이를 의도하신 건지 궁금하고요. 또 배우님께서는 이동하는 장면이라면 딱히 대사도 없고 표정도 드라마틱하지 않아서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어떠셨나요.

김현정 : 사실 영화에서 자동차 씬을 찍기가 너무 어려운 게, 사실 나올 수 있는 샷이 얼마 안 되거든요. 정면샷이나 백투샷이나 사이즈 샷 정도만 활용할 수 있고, 차종이 달라도 다른 샷을 찍을 수 있는 여지가 너무 없어요. 근데 저희 영화는 자동차에서 대사가 무진장 많거든요. 그게 진짜 어려워서 회피하고 싶은데, 제가 왜 저렇게밖에 할 수 없었나를 생각해 보면 영화 속 관계 때문인 것 같아요. 아버지와 소통이 없는 건 당연하고 사실은 어머니하고도 살가운 관계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이동하는 동선 안이나, 어머니의 아마도 유일한 취미인 목욕탕 정도밖에는 대화를 나눌 만한 공간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불가피하게 자동차 안에서 대화를 하는 장면이 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후반에 공단을 걷는 장면이 있던 건, 제가 이 공간을 좀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별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배제해도 되는 장소인데 ‘진영’이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 점점 가족의 장소인 공장으로 이동을 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공장 내부나 사무실도 더 디테일하게 들어간 거고, 한편으로 공장의 풍경을 좀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설 : 저는 제가 그렇게 많이 걷고 이동하는지 촬영할 땐 몰랐고, 영화를 보면서 알았어요. 사람은 뭔가 고민이 있거나 해소되지 않은 것들이 있으면 걷는 것 같아요. 그게 정신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니까요.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진영’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움직임이 있겠구나 느껴져서, 그것마저도 현실적으로 영화 안에 담겨 있는 것 같아서 저는 이동 장면들을 좋아해요. 이동하는 장면에서 어려움이 있지 않으셨냐고 물으셨는데 저는 전혀 없었어요. 워낙 걷는 걸 좋아하고, 영화를 전부 대구 인근에서 촬영을 했는데 주변 풍경들이나 분위기가 너무 친숙하고 예뻐서 저는 오히려 그 장면을 평화롭게 찍었던 기억이 나요.

김주리 : 벌써 GV를 마칠 시간이네요. 감독님과 배우님, 관객 여러분들께 마지막으로 인사해 주시면서 혹시 차기작이나 향후 계획 있으시면 짧게 덧붙여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현정 :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오늘 공식 GV의 마지막 날인데, 대구에서 찍은 작품을 대구에서 마무리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쁩니다. 항상 대구 영화 많이 응원해 주시고, 저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영화 만드시는 분들이 참 많으니 지역영화 많이 봐주시고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고요. 작년에 간단하게 작업한 작업들이 있어서 보여드리려고 열심히 후반 작업하고 있고, <흐르다> 이후에 공식적인 두 번째 장편을 만들고 싶어서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아직 결과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계속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설 : 저는 배우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어서 지금 연극을 준비하고 있어요. 서울에 있는 cj 토월극장에서 <오셀로>의 데스데모나 역으로 5월 12일부터 6월 4일까지 공연할 예정이니 혹시나 서울에 오실 일이 있으시다면 한번 놀러 와주세요. 또 저는 김현정 감독님의 차기작을 노리고 있으니 바지런히 하셔서 다시 캐스팅해 주셨으면 합니다.(웃음) 저희가 이 영화를 3년 전에 찍었는데요, 이 기회로 대구에 다시 와서 또 대구 관객 분들 만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반갑고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 일요일인데 와주셔서 감사하고요, 감독님이랑 저의 다음 작품들이 나오면 오늘 우리의 인연을 기억하시면서 잘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주리 : 귀한 발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시간 함께해 주신 감독님 배우님 그리고 관객 여러분 감사합니다.